무농약 포도,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보람

저농약에서 무농약으로, 화성 포도농가 이승진씨

  • 입력 2015.05.02 09:31
  • 수정 2015.11.08 00:07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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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관행농이 한 달에 한두 번 농약을 치는 동안 무농약은 너댓 번이나 무농약 제재를 쳐야 한다. 그나마 제재로는 막기 힘든 병충해도 있고, 영양제도 수시로 줘야 한다. 노동과 투자를 많이 요하지만 백화점이나 직거래 등 나름의 판로를 확보해도 일부 물량은 빈번히 제 값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보란 듯이 무농약 재배를 영위하는 이들이 있다.

경기 화성의 이승진(60)씨는 20년째 포도 농사를 짓고 있다. 2009년 갑상선암 발병을 계기로 농약의 해로움을 절감하고 그 때부터 저농약 재배를 시작했다. 그리고 인증제 폐지가 수많은 저농약 농가들의 숨통을 죄어 오기 시작한 2012년, 그는 과감히 무농약 재배에 뛰어들었다.

“예전엔 농약에 중독돼 쓰러진 적도 있을 정도로 농약을 많이 쳤어요. 그런데 그 해로움을 알고 나선 나 자신의 건강 문제를 떠나 ‘건강을 위해’ 우리 농산물을 사 먹는 소비자들을 생각하니 양심에 걸려서 안되겠더라구요. GAP로 전환하면 기존처럼 농약 적게 쓰면서 안전농산물 인증을 받을 수 있단 생각에 고민도 했지만, 그래도 결국 농약은 안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농약 인증제 폐지에 따라 GAP나 관행농을 선택하는 농민들은 대개 ‘농약 없는 농사’에 대한 막연한 걱정을 품고 있다. 그러나 무농약 제재 또한 농약과 똑같은 용도를 가진 약품이며 가짓수와 활용법이 이미 다양하게 개발돼 있다. 그 실효성은 현재 무농약 재배를 실현하고 있는 농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저농약에서 무농약으로 전환하는 것이 막막하기만 한 일은 아니다. 이승진(60)·송숙현(59)씨 부부가 포도하우스에서 곁순·덩굴손 제거작업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진 제재만 믿고 농사를 지을 순 없다. 이씨의 경우 무농약 재배를 준비하면서 경기 안성 등지의 선진농가들에게 자문을 구해 소태나무와 옻 진액 등 천연 기피제를 알아냈다. 집진드기 알러지로 고생하던 아들이 계피액으로 효험을 본 데 착안, 진드기의 일종인 녹응애 방제에 이를 응용하기도 했으며, 비료로 사용하는 인근 염전의 간수는 훌륭한 마그네슘 공급원이 돼 수세를 강하게 하고 있다. 농약을 쓰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절실한 노력으로 이어지고, 그런 노력이 제재나 비료의 불완전성을 멋지게 보완하고 있다.

경험자인 이씨가 바라보는 무농약 재배는 많은 농민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어렵지만은 않다. “무농약이 결코 막막한 얘기가 아니에요. 사람에게 해가 없는 농사를 짓겠단 뜻만 있다면, 조금 힘들지만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다만 저농약이나 관행농을 하다 갑자기 무농약을 하려면 어려울 거에요. 1~2년 정도 농약과 무농약 제재를 병용하면서 제재의 특성과 사용법을 알게 되면 ‘아, 무농약이 가능하겠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길 겁니다. 또, 무농약이든 유기농이든 먼저 토양을 잘 만들어 놔야 합니다. 질소가 과하지 않은 유기농 퇴비를 충분히 들여 미리 땅을 부드럽게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해요. 무농약을 하겠단 생각을 가졌다면 하루빨리 하나하나 준비하시길 권합니다.”

노력은 결실을 맺는다. 이씨의 포도는 블라인드 테스트로 행해진 2013년 화성시 포도축제 포도품평회에서 관행농·저농약 포도를 모두 제치고 금상을 수상, 무농약 포도의 우수한 품질을 입증했다. 또 가락시장 경락가로는 11차례나 S 도매법인 전국 최고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자부심과 긍지는 친환경 농민들이 계속해서 의지를 이어갈 수 있는 에너지원이자 그들만의 특권이다.

“간혹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나오지 않을 땐 정말, 정말로 속상해요. 하지만 수확한 포도를 소비자들이 먼 지역에서부터 찾아와 구입해 주시고, 부산·제주에서까지 택배 주문이 들어올 때 ‘무농약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고 보람도 느끼죠. 드셔 보신 분들이 한결같이 ‘특별한 향과 맛이 있다’고 해요. 무농약 포도가 맛있고 품질이 좋다는 것, 바로 그 분들이 인정해 주는 게 아니겠어요.” 꿈을 안고 사는 이의 모습은 언제나 젊다. 꿈 중에도 소박한 꿈이라면 정감마저 느낄 수 있다. 흰 머리 희끗희끗한 예순 살 이씨의 얼굴에 여섯 살 소년의 천진한 미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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