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지게·등짐③/ 거름 내는 날

  • 입력 2015.04.17 14:18
  • 수정 2015.04.17 14:19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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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요즘 시중에서 쌀 한 가마니의 무게는 80킬로그램으로 통하지만 예전에 새끼와 볏짚으로 짠 가마니에다 도정한 쌀을 담아서 유통하던 시절에는, 한 석(섬)의 무게가 1백 킬로그램이 훌쩍 넘었다. 따라서 쌀 한 가마니를 지게로 나를 경우 혈기 방장한 시골머슴이라 해도 끙끙, 된 방귀를 뀌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조선시대나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쌀가마니를 지게에 진 남자 연기자의 모습을 보면 지게라는 도구를 처음 어깨에 걸쳐본 태가 금세 도드라진다. 아무리 힘세고 노련한 지게꾼이라도 쌀가마니 같은 무거운 짐을 졌다면 허리를 적어도 30도 이상은 앞으로 구부리게 돼 있다. 지게에 얹은 물건의 하중을 단순히 두 어깨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절반 이상은 등으로 받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등짐’이라 하지 않는가? 그런데 드라마 속의 남자는 쌀 한 가마니를 지게에 지고도 거의 90도로 꼿꼿이 서서 그야말로 직립보행을 한다. 더군다나 힘들어 하는 기색도 없이 가다가 멈춰 서서 지나던 사람과 한가롭게 이러저러 농담도 나눈다. 속에다 검불을 채워 넣은 가짜 쌀가마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들켜버린다. 이래가지고서야 어디 이른바 ‘리얼리티’가 살겠는가?

농촌에서의 지게 등짐 중에서 ‘거름내기’는 대표적으로 고된 노동에 속한다. 곡식 파종을 앞두고 마당 한 쪽에 잘 삭혀두었던 퇴비더미를 헐어서, 바지게에 담아 지고 논밭으로 내어가는 작업이다. 나도 6학년 무렵부터는 어른들을 따라서 거름 내는 일을 하였다. 대개는 이웃 남정네들이 품앗이로 한 집씩 돌아가며 하는데, 거름을 내어가야 하는 전답까지의 거리가 만만찮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일꾼들은 지고 가야 할 거리를 감안해서 (주인 눈치를 보아가며)적당한 분량의 퇴비만 바지게에 담는다. 그럴 때 보면, 남의 집 일인데도 앞뒤 생각 없이 많은 양의 거름을 바지게에 수북이 담았다가 된 고생을 하는 사람이 꼭 있다. 우리 동네에서는 만식이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은, 착하지만 아둔하고 요령부득인 그를 다른 경우에 빗대어서 “만식이 거름 짐 지듯 한다”라고 말하곤 했다.

봄철에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는 덩굴식물 중에 사위질빵이라는 것이 있다. 살짝만 잡아당겨도 쉽게 끊어지는 약한 덩굴이다. 거름 내는 날, 다른 동네에 사는 사위가 일손을 거들러 와서 다른 일꾼들과 퇴비를 내게 되었다. 장모가 그의 바지게에 거름을 담는데, 몰래 밑바닥에 검불을 한 자락 깔고서 그 위를 퇴비로 덮었다. ‘처갓집 거름 내러 왔다가 골병들어서 사내구실 못 하면 내 딸만 손해지’,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을 사내 하나가 그것을 알아챘다. 그 사내는 마당가의 이팝나무를 감고 올라간 가느다란 덩굴을 끊어 가지고 오더니, “앗다, 이 집 사위 지게 질빵(멜빵)은 요놈으로 대신 해도 끊어질 염려 없겄구먼!”, 그렇게 놀렸다는 데에서 그 덩굴식물의 이름이 유래한 것이다. 농사 관련 속담 중에 “두엄바닥 거름은 삼부자가 울고 낸다”라는 말도 있다. 거름을 다 낸 줄 알았는데, 쇠스랑으로 두엄더미의 밑바닥을 긁으니 자꾸만 나온다. 고놈은 몽글고도 무거워서 3부자가 나눠지고 울고 간다는 얘기다.

거름을 낼 때는 물론이고 논밭에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 그것을 모두 지게로 운반하다 보니 집에서 전답을 오가는 길가 곳곳에 쉬는 장소가 있다. 지게로 등짐을 할 때만 사용하는 쉼터인데 우리 동네에서는 쉬어가는 나루터란 의미로 ‘쉰 나루’라 불렀다. 길가 언덕 쪽에 지게의 두 목발을 받쳐 세울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장소였다. 지게를 앞쪽으로 조금 수그린 채 끝부분이 Y자 모양으로 된 작대기로 잘 받쳐두고, 모처럼 고된 등짐을 벗고서 담배 한 대를 피운다. 바닥을 잘 살펴서 지겟작대기를 받쳐야지, 자칫 작대기가 미끄러져서 지게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흥보가> 중에서 놀부의 심술을 열거하는 대목을 보면 ‘옹기 장수 작대기 차기’라는 게 있다. 옹기장수가 바지게에 옹기를 잔뜩 꾸려서 지고 가다가 지게를 받쳐놓고 쉬고 있는데, 그 지게작대기를 걷어차 버린다면 어찌 되겠는가?

담배 한 대를 피웠으면 다시 지게 멜빵을 어깨에 걸치고 그 고단한 등짐 노역을 계속해야 했다. 그것은 농촌에 사는 한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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