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감정노동도 나눕시다

  • 입력 2015.04.17 14:16
  • 수정 2015.04.17 14:17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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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 (경남 남해군 삼동면)
경사진 묵정밭을 일궈서 고사리 뿌리를 심어놓은 지 올해 4년째입니다. 한 2백평 쯤 되는데 경운기 길 빼고 뒷도랑 만들고 하니 실제는 150평쯤 될 듯 말듯합니다. 처음 심어놓고서는 1년에 4번씩이나 김을 매느라 퍽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사이사이에 잡초도 있는 얼치기 농사를 짓습니다.

고사리는 어머니의 농사입니다. 굽은 허리로 4~6월 석 달간은 사흘에 한 번씩 꼬박꼬박 새벽이슬을 맞으며 고사리를 꺾으십니다. 그럴 때마다 매번 감사하고 미안하고 혹여나 넘어져서 다칠까봐 걱정이 되지만, 다른 일로도 바쁜 우리 부부는 고사리에 신경을 잘 쓰지 않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일을 잘 하시다가도 가끔씩 부아가 나시나 봅니다. 몸에 맞을 정도의 일에는 기분이 좋으신데 일을 좀 고되게 하시어 지치게 되면 엉뚱한 것으로 감정을 표현하십니다. 특히 며느리가 농사일 않고 어디라도 다녀올 양이면 연에 마음이 상하시나 봅니다.

엊그제 아침에도 어머니께서 고사리 꺾기가 좀 힘이 드셨나 봅니다. 저를 보시더니 그물이 없다며 역정이셨습니다. 창고에 있다고 말씀드리자 그게 왜 거기 있냐고 하시며 마뜩잖아 하셨습니다. 사실은 그물이 창고에 있지 안방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께서 지치셨다는 신호인 것입니다. 이럴 때는 다른 것 없습니다. 호들갑스럽게 목소리를 솔톤으로 높이고 “하이고, 울 오마니 고사리 꺾는다고 힘드셨는가베예? 문디겉은 고사리가 와그리 많이 핏노? 쪼껨만 피지, 울 오마니 허리가 뿔라지삐겠네.” 그때사 어머니 표정이 밝아지십니다. 당신의 힘듦을 누군가 알아주는 것으로 마음이 조금 펴지시는 것이겠지요.

매번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런 나의 반응은 나름 나의 컨디션이 좋거나 돌아다니느라 일을 하지 않아서 어머니에게 마음의 빚이 조금 졌을때나 가능하지, 몸과 마음이 다 지치고 호주머니도 말라서 우울할 때 어머니의 반응이 대책없을 때는 딴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저도 힘들어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그냥 넘기고 맙니다.

몸으로 하는 일은 육체노동, 머리로 생각하는 일은 정신노동, 이것 말고 또 하나의 노동이 있으니 이른바 감정노동이랍니다. 어랏! 감정노동? 감정도 일인가? 하겠지만 그렇답니다. 그중에서도 아주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 합니다. 희애락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쯤이야 무슨 노동 이겠냐만, 힘든데도 즐거운 척, 화가 나는데도 온화한 척, 슬픈데도 아니 그런 척, 척척척 매우 힘든 일이겠지요. 살다보면 나도 힘든데 다른 사람을 위로해야하고, 나도 두려운데 힘이 넘치는 것처럼 해야 하고 그만두고 싶은데 차마 중단할 수 없어서 앞으로 나서야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물론 어른으로 산다는 것, 또는 속이 깊은 사람이면 느낌 그대로 감정을 표현하는게 아니라 감정을 거르고 조절하여 참으며 사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감정노동이 가족 사이나 사회관계에서 특정 누군가가 계속 담당해야 한다면? 억울하고 부당하겠지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습니다. 가족 내에서도 계속 위로를 하고 격려를 하고 분위기를 높여주는 감정노동을 더 많이 하는 쪽이 있습니다. 대형마트의 계산대 직원들이 그렇다 하고, 핸드폰 고치는 서비스센터 직원이 그렇다 합니다.

만약 아침에 어머님께서 남편에게 그물이 창고에 있다고 역정을 내셨다면? 틀림없이 투닥거렸을 것입니다. 그물이 거기 있는게 뭐 어때서 화를 내시냐며 댓구했을 상황이 눈에 선합니다. 이쯤되면 그림이 딱 나옵니다. 감정노동을 많이 하는 쪽은 힘의 관계가 약자일 경우라는 것. 그러니 감정노동도 어느 한쪽 일방이 아니라 상호간이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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