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수의매매·시장도매인제 … 가락시장 변화의 바람 분다

목표치 채우기 위한 형식적 정가·수의매매 개선돼야
시장도매인제, 농식품부 조건부 승인에 막혀

  • 입력 2015.04.05 23:45
  • 수정 2015.04.06 10:08
  • 기자명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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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안혜연 기자]

지난 2012년 도매시장 가격 폭등락 완화 대안으로 정가·수의매매가 도입됐다. 농산물 가격이 폭등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산지에서 농산물을 출하하기 전, 미리 판매 금액과 물량을 정하고 거래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무엇보다 정가·수의매매의 장점은 ‘계획 판매·구매’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정가매매란 가격을 정하고 거래하는 방식이며, 수의매매는 상대를 정하고 거래하는 방식이다. 즉, 정가매매는 출하자가 사전에 판매 물량·가격을 도매시장법인에 제시하면 경매사가 구매자에게 구매 의사를 물어 거래를 확정하는 방식이며, 수의매매는 도매시장법인이 구매자와 1대 1로 협의해 가격·수량 등의 거래조건을 정하는 매매방식이다.

정가·수의매매 도입의 결정적인 계기는 배추값 파동이었다. 지난 2010년 배추 가격이 사상 초유로 폭등하면서 소비자들은 배추 한 포기를 사기 위해 1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을 지불해야 했다. 배추값 폭등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는 충분했다. 이상저온 현상과 잦은 비로 배추값 폭등이 충분히 예견됐는데 이를 방치했다는 비판이 농림축산식품부에 쏟아졌다. 이에 농식품부는 가격 폭등락을 완화할 수 있는 정가·수의매매를 도매시장에 자유롭게 허용하고, 2016년까지 정가·수의매매 비율을 2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정가·수의매매로의 거래제도 전환은 이미 전 세계적인 추세다. 일본 중앙도매시장의 경우, 정가수의매매 비율이 해가 갈수록 증가해 지난 2010년 82.9%에 이르렀다.

경매제에 익숙한 도매법인 … 정가·수의매매 확대 더뎌

하지만 지난 30여 년 간 경매제에 익숙해져 온 도매시장법인이 한 순간 다른 제도를 수행·확대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도매시장법인 경매사가 출하자와 구매자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해야 하다 보니 업무량이 과도하게 늘어나고 있다. 한정된 인력과 시간으로 정가·수의매매를 늘리기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또 각 도매시장별로 할당된 정가·수의매매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수입농산물 대부분이 정가수의매매로 기록되고 있다. 지난해 가락시장에서 가장 많이 정가수의로 거래된 품목 중 대부분은 수입 농산물로, 전체 정가수의거래 물량 중 약 40%를 차지할 정도다.

또 경매로 들어온 물량을 정가수의 형태로 거래하는 경우나, 기록상장경매를 정가수의매매 형태로 바꾸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지방도매시장의 경우 상황은 더 열악해 정가수의매매를 주로 수입농산물이나 판매가 어려운 일부 농산물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수집과 분산을 한 번에 ‘시장도매인제’

또 다른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시장도매인제도다. 시장도매인제는 도매법인의 수집 기능과 중도매인의 분산 기능을 중도매인이 모두 수행하는 구조로 이뤄진다. 때문에 유통단계와 비용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정가·수의매매 형태의 거래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 폭등락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시장도매인제는 지난 2000년 농안법 개정으로 지방도매시장 도입이 가능해졌으며 2005년 농안법이 재차 개정되면서 중앙도매시장, 즉 가락시장 도입이 가능해졌다. 이후 가락시장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 있어왔으나, 과거 위탁상의 ‘칼질’ 이나 대금 정산 안전성 문제와 검증되지 않은 제도라는 이유로 가락시장에 도입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2004년 강서시장에 처음으로 도입된 시장도매인제가 지난 11년간 연평균 약 4.3%의 성장세를 보이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가락시장에 대금정산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산회사가 설립되면서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 강서시장 시장도매인 전경. 홍기원 기자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둘러싼 갈등

가락시장 시설현대화와 맞물리면서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 간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특히 직접적으로 수익에 영향을 받는 도매시장법인과 시장도매인제 전환을 원하는 일부 중도매인 간 갈등이 첨예하다. 하지만 출하자들은 상대적으로 시장도매인제 도입 문제에 소외돼 있어 상인들 간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시장도매인제 찬성 입장 시장도매인제 반대 입장
•경매제의 폐해를 보완하기 위해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해야 한다.

•시장도매인제는 출하선택권 확대와 더불어 생산자 수취가격, 가격 안정성을 제고시킨다.

•대형유통업체 시장 지배력 강화, 정책지원에 의한 산지유통 규모화, 소비자 구매 패턴 변화 등 농산물 유통환경 변화에 대응하려면 도매시장이 변화해야 한다.

•도매시장법인의 독과점으로 시장 내 경쟁 유인 요소가 없다.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제 병행을 통한 유통주체간 경쟁이 필요하다.

•시장도매인제는 거래의 공정성·투명성을 확보할 수 없다.

•도매시장에 출하하는 농산물의 적정가격을 왜곡할 수 있다. 교섭력이 취약한 농가는 상대적으로 불리하며, 독자적인 기준가격형성이 어렵다.

•동일한 공영도매시장 내에서 도매법인과 시장도매인 두 주체가 존재하는 것은 시장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농산물의 대량처리가 어려워 유통효율이 떨어질 것이다.

농식품부의 시장도매인제 도입 조건부 승인,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시장도매인제 도입 논란 장기화는 곧 가락시장 2·3단계 시설현대화 사업 지연으로 이어진다. 거래제도와 그에 따른 세부 방향이 정해져야 시설현대화 설계에 이를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락시장 1단계 사업 마무리 단계인 지금에도 2·3단계 사업계획은 불투명하다.

도입 논란이 장기화되는 것은 농식품부가 시장도매인제 도입 승인 조건 중 하나로 ‘이해관계자들 간 합의’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1월 농식품부는 가락시장 내 시장도매인제 도입 조건부 승인으로 ▲대금정산조직 설립을 통한 대금결제 안전성 투명성 확보 ▲시장도매인 상한 수 및 자본금 규모 연구용역, 전문가 협의 거쳐 업무규정에 반영 ▲농식품부, 서울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출하자 및 유통인 등 공청회 통한 합의를 주문했다. 앞의 대금정산조직 설립과 연구용역은 이행됐으나, 이해관계자들 간 합의는 아직까지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농식품부는 조건부 승인 처리 기한을 지난해 12월에서 오는 6월까지 연장한 상태며, 최근 ‘합의 없는 시장도매인제 승인은 없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고수했다.

하지만 애초 도매법인과 중도매인 간 합의는 이뤄질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최근 가락시장 시장도매인 추진위원회가 조건부승인에 대해 두우법무법인에 법률 의뢰한 결과, ‘농안법 상 농식품부가 시장도매인제의 도입에 관해 이해당사자 전원의 합의를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규정은 없으며, 농식품부가 도매시장 개설자의 시장도매인 지정권한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규정도 없다’, ‘시장도매인제의 도입에 있어서 도매시장 개설자가 별도로 농식품부의 승인을 받을 필요는 없으며 현 농식품부의 조건부 승인은 행정지도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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