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가락시장, 성장을 멈췄다

낮은 수취가·비싼 구입가, 변화 기로에 선 가락시장

  • 입력 2015.04.04 12:57
  • 수정 2015.04.04 13:01
  • 기자명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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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의 모든 농산물이 모이는 가락시장은 말그대로 국내 농산물의 ‘메카’다. 가락시장이 개장되면서 도입된 경매제는 농산물 유통에 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현재, 가락시장은 여전히 위상에 걸맞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 “가격 경쟁력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한 가락시장은 과연 변할 수 있는가. 지난달 30일 밤 불 밝힌 가락시장으로 농산물을 실은 트럭들이 드나들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신문 전빛이라 기자]

경매제를 기반으로 하는 농수산물도매시장의 역사는 1926년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일제는 농수산물유통 부문 장악을 위해 당시 일본에서 운영되던 ‘1도시 1시장’ 체제를 도입하고 지정도매법인제를 시행했다. 일본이 지정한 도매법인의 운영주체는 물론 일본인이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1976년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즉, 농안법이 경매거래를 원칙으로 제정되고, 이를 기반으로 1985년 최초의 공영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이 개장됐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로 시행된 경매제는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에 한 획을 그었다. 농민들이 위탁상으로부터 불공정거래, 일명 ‘칼질’을 당하는 사례가 빈번했으나 경매제 도입 후 농민들은 더 이상 ‘칼질’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1995년 유통시장이 개방되면서부터 경매제의 역할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 가락시장 개장 30년. 급속도로 변하는 농산물 유통시장에서 경매제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생산자는 낮은 수취가를 받고, 소비자는 비싼 가격에 구입하는 모양새다. 투명성과 공정성은 이제 경매제도가 아니어도 가능하다.

가락시장이 변화의 기로에 섰다.

“가격 경쟁력 없는 공영도매시장,

최후의 보루 역할뿐 … 특단의 대책 필요”

더딘 변화 … ‘갈 길이 멀다’

농산물 공영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은 한마디로 모든 농산물이 모이는 유통경로라 말할 수 있다. 가락시장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는 대형유통업체도 전체 농산물을 취급하지 못한다. 대형유통업체 등과 직거래하는 생산자도 늘고 있지만, 전체 출하주에 대해 관여할 수 있는 곳은 도매시장이 유일하다. 또한, 공영도매시장인만큼 정부가 정책적으로도 관여할 수 있다. 전체 농산물 ‘기준가격’이 이곳에서 정해지는 이유다.

그런데 수집과 분산기능이 분리돼 있는 가락시장의 특성상 ‘기준가격’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통비용은 증가하고 있는 반면 효율성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경매를 통해 농산물을 낙찰 받아 판매하는 중도매인은 점포 배송비 등의 물류비용 부담, 시시때때로 변하는 낙찰가, 필요 물량 확보 등이 어려워지면서 대형마트에 견줄만한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표1>과 <표2>에 따르면 가락시장 거래물량이 2010년부터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래금액 역시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특히 도매법인들의 집하기능이 부족하면 기록상장, 형식경매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다. 시장교섭력이 커져가고 있는 산지유통센터, 농협연합사업단, 영농조합법인 등의 출하조직들이 가락시장 출하를 외면하고 있다.

경매제가 경직됨에 따라 가장 어려워진 건 영세 출하자다. 성출하기 경매 물량이 몰리면 유통속도가 지연되면서 상품성이 훼손되고, 결국 좋은 가격을 받지 못하게 된다. 과도한 물류비용에 따라 경쟁력은 더욱 저하되기 마련이다.

영세농 보호 목적도 있는 경매제는 오히려 영세농에게 ‘칼’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농안법에 따라 수탁을 거부할 수는 없으니 수탁 물량은 모두 받아주지만 가격 안정성은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가·수의매매 활성화, 왜 어렵나

정부는 경매제의 가격변동성 완화를 위해 2012년 8월 농안법을 개정하고 정가·수의매매 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른다. 그런데도 가락시장은 아직까지 예전의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 수탁주체간의 경쟁이 없는 상태의 가락시장에서 문제점을 읽을 수 있다. 기존 도매법인들은 경매제로도 충분한 수익을 올리고 있기에 산지 물량수집을 위한 경쟁은 필요치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2009년 말 검찰수사 결과, 가락시장 전체 거래물량의 8%가 정가수의거래였으며, 이 가운데 87%가 편법·허위거래로 조사된 바 있다.

또한 정가·수의매매가 주로 선취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것도 문제시 되고 있다. 정가·수의매매를 통해 대형할인점 등이 상품의 출하 물량을 선취로 가져갈 경우 중도매인들은 남은 중하품의 물량을 처리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우려다. 정가·수의매매의 도입취지가 무색한 실정이다.

최종 판매·구매처 ‘가락시장’

가락시장이 ‘재고처리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경매제 특성상 구매자가 요구하는 물량, 가격, 시간을 따라가지 못함에 따라 대부분의 대형 구매자들이 가락시장 외 유통경로를 찾아 나서고, 결국 상품 이상은 가락시장 밖에서 유통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또, 친환경 또는 무농약 이상의 고품질 농산물은 가락시장에 들어오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일반농산물 경매 후 친환경농산물이 경매되지만 가격 차이는 없다. 오히려 모양이 좋지 않아 일반농산물보다 하품의 취급을 받는다. 친환경농산물 특화 경매장에 일반농산물이 쌓여 있거나, 일반농산물 경매장에 친환경농산물이 쌓여 있는 경우가 빈번해 가락시장에 들어오는 친환경농산물은 일단 ‘의심’을 받게 된다. 친환경농산물 생산자들이 “가락시장에 낼 바엔 그냥 폐기하고 만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가락시장 내 중도매인들 역시 일부만 경매제를 통해 유통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산지와 직접 계약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관계자는 “가락시장에 중하품만 들어오고 있다. 분배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소비지가 변화함에 따라 구매자들의 요구사항 역시 변화하는데 경매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가락시장은 다양하고 일정한 물량이 들어오기 때문에 버릴 수도 없는 시장이다. 또 공공기관에서 보장해주는 시장 아닌가. 가락시장이라는 이름이 보증 되기 때문에 가락시장 거래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고 덧붙였다.

일례로 가락시장 내 수산시장을 들었다. 수산 품목 특성상 경매제와 맞지 않아서 더 빨리 침체됐다는 것. 그나마 중하품을 처리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수준이다.

공사 관계자는 “청과 품목도 그 징후들이 보이고 있다”며 “이미 지방도매시장들은 매우 어렵다. 도매시장 가격이 재래시장보다 비싸다. 수수료 때문이다. 가격에서 이길 수 없어 결국 공영도매시장이 최후의 보루가 된 셈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또 다른 제도가 들어와 제도간 경쟁이 자리 잡히면 서비스 경쟁이 일어날 것이라 기대한다”면서 “시장도매인제도가 만병통치약이라는 것이 아니다. 현재 정체되고 있는 가락시장을 살릴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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