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13회

  • 입력 2015.03.29 10:33
  • 수정 2015.03.29 10:36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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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고 어쩌면 기왕에 청년회에서 하고자 했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같았다.

“이게 생각하고 자시고 할 문제가 아닌 겁니다. 내가 선택 형의 생각을 대강 알고 있는데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 생각을 펼치는 걸 왜 주저하겠소? 그러니까 내 말대로 일단 일을 맡고 앞으로 잘 해 나갑시다.”

▲ 일러스트 박홍규

선택이 그가 권하는 대로 국민재건운동에 가담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권순천이 제안한 간사라는 직함이 큰 이유였다. 읍 단위의 간사는 공무원으로 치면 8급 정도에 해당한다고 했다. 급하게 만들어지는 임시직이긴 해도 월급 비슷한 수당이 지급된다고도 했다. 보통은 지방의 유지 급 되는 이가 맡는데 선택의 경우에는 전국에서도 드문 특별한 경우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도지사가 본부장이었고 공무원을 위시한 온갖 지방의 유지들이 다 참여하는 조직이었다. 그런 엄청난 조직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간사를 맡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평소에 권력욕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막상 그런 제의를 받자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다. 권순천이 돌아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내가 얼핏 들었는데 뭔 소리라냐? 그 냥반은 대체 누구고?”

집에 모여든 마을 어른들이 선택을 둘러싼 채 눈을 껌뻑이고 삼촌이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마음이 조금 진정되며 장난기가 일었다.

“지금 왔다 간 사람이 이번에 군사 혁명을 일으킨 박정희 장군 부하라네요.”

장난삼아 한 말인데 모여 선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이 참말이여? 어쩐지 고 까만 차 몰구 들어올 때부터 심상찮다 했지, 선택이 늬가 서울서 공부하더니 역시 큰 인물이 되었구만, 그려.”
“이게 보통일이 아니네. 나랏님이 보낸 사람이 선택이럴 찾아왔다는 거잖여? 신문에 날 일이네.”

제각기 고개를 주억거리며 한 마디씩 보태는 것을 들으며 선택은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어쨌든 권순천이 정부 아래서 일을 하는 사람은 틀림없으니까 아주 거짓은 아니라도 시골 사람들이 과장되게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열적은 노릇이었다. 새삼스레 선택을 바라보며 좋은 말 한 마디라도 보태고 싶어서 우물거리는 동네사람들이 일견 비굴해보이기도 했다. 하긴 면서기나 경찰만 나타나도 숨을 구멍 먼저 찾는 사람들이니 나랏님 운운하는 앞에서 어찌 비굴해지지 않을까.

“아니, 이 사람들아. 그럼 우리 조카가 이대루 여기 주저앉아서 하냥 세월할 줄 알었는가?”

삼촌도 얼굴이 상기되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꽤 있는데도 반말로 목청을 높였다.

“뒤에서 어쩌구저쩌구 떠드는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자, 인제 우리 조카가 어떤 사람인 줄 알었는가? 서울서 뫼셔갈라고 자가용 타고 오는 사람이여. 이런 시골 구석에서 썩을 사람이 아니란 말여.”

선택을 두고 마을에서 꽤나 수군거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면내의 수재였고 서울 명문 고등학교에 들어간 데다 서울에서 공무원을 한다는 소문까지 난 선택이 돌연 시골에 돌아와 사랑방에서 새끼나 꼬고 있으니 뒷말이 무성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리고 그런 뒷말에 제일 속 앓이를 하였을 사람이 삼촌과 어머니였다. 그러던 것이 권순천의 방문으로 엄청난 반전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서울로 모셔 가느니, 어쩌니 하는 삼촌의 과장에 대해서는 입막음을 해야 했다.

“아니요, 저를 데려가려는 건 아니고요. 이번에 정부에서 큰 일을 하나 하는데 저한테 우리 읍내를 맡아서 일을 해달라는 거예요. 별 것도 아니니까 말 내지들 마세요.” 아무리 권순천이 중앙에서 내리민다고 해도 직책이라는 것은 어디에나 탐내는 사람들이 있고 미리 소문이 나서 좋을 게 없을 것이었다. 사람들은 한참이나 더 머물며 잘 알지도 못하는 서울 정가 이야기까지 씩둑꺽둑 말을 보태고 나누다가 저녁참이 다 되어서야 돌아갔다. 개중에는 선택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는 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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