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시어머니와 씨앗

  • 입력 2015.03.21 23:20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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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
올해 78세이신 시어머니는 평생 농사를 지어 오셨습니다. 농지가 좁고 비탈진 남해 땅인 만큼 기계화가 덜 되어 고구마며 마늘 등의 농사를 줄곧 해 오셨던 까닭에 길을 걸으실 때는 허리가 90도로 꺾여서는 힘들어하십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노인의 상징인 듯한 지팡이를 멀리하시더니 요즘은 짧은 거리를 이동하실 때도 사용하십니다. 그만큼 불편하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농사에 관해서는 웬만한 지식은 다 가지고 계십니다. 철마다 곡식 심을 때는 언제이며, 언제쯤 여물었는지를 잘도 아십니다. 사소한 징표에도 일기의 변화를 읽어내고 날씨에 맞춰 농사계획을 세우시는 일등 농사꾼이십니다.

그 중에서도 씨앗관리를 참 잘 하십니다. 수확한 콩이며 깨 등 갖가지 곡식들 중 제일 튼실한 놈을 골라 씨앗으로 남겨 두십니다. 잘 말려서 그늘에 보관하다가도 중간에 혹여 덜 말라서 벌레가 생기지는 않나 유심히 관찰하십니다. 말려서 보관하는 씨앗은 그나마도 관리하기가 쉽지만 생강이나 토란, 감자처럼 수분이 있는 채로 관리하는 씨앗들은 퍽이나 까다롭습니다. 가을감자를 수확해서는 얼지 않도록 땅에 묻었다가 이듬해 이맘때쯤 순이 잘 튼 것들을 심습니다. 씨앗관리의 백미는 생강입니다. 생강은 뚜껑이 있는 상자에 흙을 담고 거기에 묻어서 방안에 둡니다. 그러고는 가끔 수분이 마르지 않도록 겨우내 한 번씩 물을 줍니다. 그렇게 잘 보관된 생강은 썩지도 마르지도 않고 씨앗도 되고 먹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나의 시어머니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기 때문에 시어머니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농사짓는 여성농민들은 늘 그렇게 해왔습니다. 농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씨앗을 각자의 방식대로 대를 이어 관리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가 농사짓는 씨앗들은 대부분 그런 것들입니다. 가장 잘 키운 것들로, 가장 소중하게 관리되어 오래도록 보존되어 온 것입니다. 그 중심에 여성농민의 손길과 사랑이 있어왔던 것입니다.

앗, 그런데 종묘회사에서 파는 씨앗들을 구입해 쓰면 그만이지, 종자관리가 왠 말이라굽쇼? 그런데 말입니다, 이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비밀인데요, 돈으로 구입한 종자는 이듬해 다시 종자로 받아 쓸 수가 없답니다. 왜냐구요? 돈 때문 종자에 손을 써놔서 이겠지요. 그렇다고 연구자들이 세상에 없던 품종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있던 고추 중에서 조금 개량한 정도로, 있던 호박에서 더 단단한 호박으로, 있던 옥수수에서 조금 더 크게 개량한 옥수수가 되면서 종자로 남길 수도 없으면서 비싸지기만 했습니다. 더불어서 시어머니같은 종자관리의 대가들의 손길도 더 이상 값어치 없게 되고. 그런데 ‘있던’ 종자는 어디서 어떻게 누구의 손으로 지켜져 왔을까요? 그 값은 누구에게 내었나요? 이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종자에서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농민의 힘이 거세지면 농민 쪽 입장이 강해지고 거대 종자회사의 힘이 세지면 돈 입장이 강해집니다.

햇빛, 흙, 물, 씨앗 등 농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자원들 중 사람의 손으로 관리 가능한 것은 씨앗입니다. 그것을 대를 이어 지켜온 것은 바로 농민들이고 그 중에서도 여성농민들입니다. 이만하면 종자회사에서 여성농민들에게 표창장을 주고 나라에서는 농업발전 일등공신으로 대접해도 좋지 않겠습니까? 씨앗을 뿌리는 이 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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