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 따라 생활건강] 콤바인이 앗아간 팔 한쪽

  • 입력 2015.03.21 21:12
  • 수정 2015.03.21 21:18
  • 기자명 나현균 김제협동조합아카데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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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현균 김제협동조합아카데미회장

세월호유가족 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님과 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님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진도 팽목항을 거쳐 다시 김제를 찾은 건, 더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8월 10일경이었다.

나는 그날 진료를 서둘러 마치고 그분들이 잠시 쉬고 있었던 김제 원평성당에 들렀다. 애초의 계획은 찾아 뵙고 혹시라도 아프신 곳이 있으시면 한방진료라도 해드리려는 심산이었지만 정작 그분들게 필요한 것은 그분들의 심적 고통을 공감하는 사회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는 애초의 계획을 바꿔 일행들의 도보행진에 동참하였고, 두 시간 남짓 걸은 후, 나는 다른 일정이 있어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금구에서 나를 다시 원평성당까지 낡은 트럭을 몰아 데려다 준 한 농부의 사연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그날 그는 나를 원평성당에 내려주면서 성당앞 커브길이 급하여 차가 언제 뛰쳐나올지 모르니 운전조심하라는 신신당부의 말을 남기고 서둘러 일터로 향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신중하던 그가 바로 몇 달뒤 가을, 추수터에서 그만 사고를 당하였다. 추수를 하다가 한 쪽 팔이 그만 콤바인에 딸려 들어가고 만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이맘때쯤 김제농민회 행사장에서였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농민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1989년이후 줄곧 가장 앞장서서 싸워온 조직이었고 김제농민회 또한 전국의 어느 농민회 못지 않게 열심히 투쟁해 왔다. 하지만 그 고난에 찬 투쟁의 연속은 집행간부들의 끊임없는 희생을 요구하기에 나중에는 집행간부를 맡을 사람이 없어 인물난을 겪고 있었다. 그런 그 자리에 그는 벌써 오랜기간동안 김제농민회 교육부장이란 중책을 맡아왔던 사람이었다.

옆에 떨어진 벼 이삭을 손으로 주워 콤바인에 넣다가 잠시 한 눈을 팔았을까? 순식간에 팔이 함께 딸려들어가면서 그만 청천의 벽력같은 사고가 터지고 만 것이었다. 팔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병원에 실려가면서도 이것이 정녕 꿈이기만을 바랐을 그, 이제 그는 사라진 팔 대신 의수를 착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느낄 실망과 낙담감을 차마 마주 대할 용기가 없어 나는 아직까지 그를 찾아 보지 못하고 있다.

한의학에 관심을 두면서 어떤 선생님의 가르침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사람을 고치려면 사람뿐만이 아니라 병든 사회를 함께 고쳐야 한다’고.

그렇다!

세월호가 보여준 우리사회의 병든 모습은 멀쩡한 사람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여 생병이 나게 만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멍든 가슴에 소주 한 잔, 담배 한 모금을 들이키려해도 ‘담뱃값을 인상하면, 가난한 사람은 담배를 끊을 것이고 부자들은 그냥 담배를 피게 될 것이니 이것이 부자증세의 일환’이라는 모 여당의원의 어거지는 서민들의 울분을 더하게 한다.

신중했던 그가 왜 그런 사고를 당했을까? 추수 때 일은 많은데 시기를 놓치면 안되니 시간에 쫓기게 되고 그러다보면 야간작업도 불사하는데,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집중력이 흩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사고가 나는 것이리라. 콤바인사고는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허다한 산재사고 중의 하나이다.

누군가는 농촌이 좋아졌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농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어르신들은 한 달 수입이라 해봤자 용돈벌이하면 다행이다. 그리고 젊다는 5~60대 농민들이 자식을 대학이라도 가르치려면, 정말 부부가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는 게 농촌의 현실이다.

나는 우리 한의사들이 개인적인 병을 치유하는데도 열심을 다 해야겠지만 더 나아가 이 사회의 모순으로 자꾸만 병들어 가는 사람들을 살리는데 함께 나서기를 간절히 원한다. 사람을 멍들게 하는 사회제도를 고쳐서 농민들의 멍든 가슴을 함께 치유하자고 권하고 싶다.

그것이 우리 한의사들에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의료인으로서 더욱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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