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12회

  • 입력 2015.03.21 21:09
  • 수정 2015.03.21 21:19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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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정선택 씨도 그리 생각할 줄 알았소. 내가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그 때 같이 다니던 김재열이나 그런 친구들은 아무래도 삐딱한 자들이었고.”

진담이 숨어있는 농을 던지며 권순천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런 식으로 재열을 평가하는 것에 살짝 반감이 일었지만 그들의 눈으로 보자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했다. 선택이 재열과 거리를 두게 된 것도 직접 정치에 뛰어들고자 하는 재열의 선택에 찬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이번 군사 정변 와중에 재열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어쨌든 아직 권순천이 찾아온 이유는 짐작할 수 없었다.

▲ 일러스트 박홍규

“그런데 이렇게 시골에 처박혀 사는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선택이 조심스레 묻자 권순천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알만 한 사람은 거의 알고 있는데 혁명 정부에서는 대대적인 국민운동을 시작하고 있소이다. 재건국민운동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혹시 들어보았소?”

금시초문이었다. 정변이 일어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대대적인 국민운동을 한다고 하니 무언가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이었다.

“저는 듣지 못했는데요, 그게 어떤 운동이지요?”

“취지는 뭐, 간단합니다. 이 혁명을 단순하게 뜻있는 군인들의 혁명이 아니라 국민 혁명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런 전제 하에서 전 국민이 민주주의 이념 아래 협동단결하고 자조자립정신으로 향토를 개발하며 새로운 생활 체제를 확립하자는 겁니다.”

권순천은 머릿속에 달달 외운 듯이 교과서 읽는 것처럼 설명을 했다. 무슨 말인지 대강 짐작은 가면서도 어딘지 뜬 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렸다.

“우리가 이 재건국민운동본부를 이달 말까지 전국적으로 조직하는 게 목표입니다. 나도 그 일에 발 벗고 뛰는 입장인데 여기에 젊은이들이 많이 참여를 해야 한다 이거지요. 요 며칠 새 충청도 일대를 다니고 있는데 당연히 우리 정선택 형이 떠오르더란 말이오. 그래서 이 국가적인 대사에 함께 하자고 찾아온 것이오.”

이야기를 듣는 도중에 언뜻 짐작은 되었지만 대놓고 제안을 받고나자 어찌 해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제가 그런 국가적인 일을 할 재목이 되나요? 나이도 아직 어리고. 아무래도 권 선생님이 저를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일단 뒤로 빼고 보자는 심산으로 그렇게 나가자 그가 과장되게 손사래를 쳤다.

“무슨 말씀을. 배운 걸로 보나 생각으로 보나 솔직히 나보다 훨씬 더 낫지요. 그리고 지금 혁명 정부 자체가 젊은 정부 아닙니까? 박정희 의장님 나이를 알지요?”

신문에서 본 바로는 1917년 생이라고 했으니까 마흔 다섯이었다.

“전임 이승만 대통령보다 무려 마흔 두 살이나 젊습니다. 그리고 의장님이 농촌에 대해서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하는지 몰라요. 더구나 농촌 젊은이들한테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단 말이죠. 본래 그 분이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고.”

박정희의 경력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자 무언가 가슴이 동요되는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 시골에서 흔히 하는 말로 대추방망이처럼 야무지게 생겼다는 느낌이었고 냉정한 인상이었는데 농민의 아들, 그것도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게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권순천이 말을 이어갔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다 적혀 있으니까 천천히 보도록 하고 일단 내가 생각하는 건 정선택 형이 이곳 읍 단위 본부에 총괄을 맡아달라는 거요. 따로 지방대회를 하겠지만 내가 이름을 올리면 그대로 되는 거니까, 일단 수락만 하면 됩니다.”

권순천은 서류 가방에서 몇 장의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한두 장을 급하게 읽어보니 재건국민운동에 대한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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