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방? “사랑방!”

  • 입력 2015.03.21 09:15
  • 수정 2015.03.21 10:15
  • 기자명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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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전빛이라 기자 · 사진 한승호 기자]

아침 7시. 가게 문을 열자마자 하나 둘 손님들이 들어온다.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하우스로 농사일을 나가기 전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기 위한 손님들로 북적인다. 그렇다. 이곳은 농약방이다.

농약방…. 내게 농약방은 ‘농약방이 폭리를 취한다’는 문장으로 가장 익숙한 곳인데, 어째 이곳을 찾는 이들의 얼굴이 밝다.

금산농약방은 전국농민회총연맹 진주시농민회가 지역 농자재값을 낮추기 위해 만든 사업체다. 20여년 전, 진주시 농약방은 물론이고 농협도 농자재값 ‘폭리’를 취하기 급급했다.

이를 막기 위해 진주시농민회가 우리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농약방을 직접 운영, 적정가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니 지역 농약방과 농협은 금산농약방을 따라 농자재값을 내릴 수밖에. 다른 영농조합들과 다르게 우리영농조합의 조합원이 950명에 달하는 이유다.

농자재값 안정이라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여전히 다른 농약방과 농협의 농자재값 견제를 위해 운영되고 있다.

▲ 본지 전빛이라 기자(왼쪽)가 지난 16일 경남 진주시 금산면 금산농약방으로 진딧물약을 구입하러 온 박상갑씨로부터 약과 관련된 설명을 듣고 있다.

바쁜 아침시간이 지나고 점심시간 즈음이 돼야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생긴다.

“테이프 하나 줘요. 아, 고추 약 칠 것도. 총체약하고.”

금산으로 귀농한 지 1년 된 손중호씨가 농약방을 들렀다. 박성열 금산농약방 소장은 테이프와 총체약을 들고 오며 말한다. “50말 치면 된다.”

“이거 말고 다른 거 줘라. 왜 그 조그마한 거. 이거는 전에 쳤다.”

“테이프랑, 총체약이랑 전에 갔다 준거랑 해서 다 합치면 19만8,000원.”

“뭐 이리 비싸노.”

“청양은 언제 따나?”

“2주에 한 번씩은 따고 있다.”

“이제 날이 따뜻해져서 2~3일은 당겨 따야 한다.”

“근데 피망이 노랗다.”

“너무 노랗다 싶으면 따기 4~5일 전에 아미노산 쳐라. 때깔은 좋아진다. 싼 거 보여줄까?”

“싼 거 말고 좋은 거 줘라.”

“그래도 니 용감하네. 다른 사람들은 싼 거 달라 하는데.”

“내년엔 나락 할 거다. 다른 사람 하지 말래도 나락으로 맘 굳혔다.”

“그래 나락이 젤 낫다.” 손씨와 박소장 사이에 이런 저런 말이 오간다.

▲ 이날 판 농자재 목록을 거래명세서에 적고 있다

나름 농활이라고 농약방을 왔는데 나의 얕은 지식으로는 이들 사이에 낄 수 있는 말이 없다. 초조해진다. 그래, 계산이라도 하자. “19만8,000원입니다.” 계산서를 작성하고, 내 서명까지 넣는다.

그리고 손씨에게 이곳을 찾는 이유를 물었다. “우리 농장 관리인이나 다름없어요. 지난해 귀농해서 청양, 피망, 녹각 다 하는데 많이 의지하고 있어요.”

농약방의 또 다른 역할이다. 농약방 농자재값이 지역농협보다 5%가량 비싸지만 농민들은 이곳을 찾는다. 직접 하우스나 논밭을 보고 무엇이 필요한지 조언해주기 때문이다. ‘애프터서비스’다.

“대화를 하다 보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어요. 요즘 이런 바이러스가 심하니까 주의하라고도 하고. 이렇게 서로간의 신뢰를 쌓는 거예요. 대부분 이렇게 농약방에 앉아 있지 않고 딱히 문제가 없는 하우스도 가서 커피 한 잔이라도 해요. 그러다보면 또 눈에 띄는 부분이 있고요.” 지속적인 대화 없이는 농업기술원 박사도, 농협 직원도, 알아낼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

“사실 농약이 마진이 많이 남는 품목이 아니에요. 영양제도 그렇고, 오히려 팔면 팔수록 적자인 품목들이 있어요. 농민들이 찾으면 갖다 놓긴 하지만 이거 안 찾았으면 싶기도 하는 것들이 있고. 그런데 또 그런 걸 제일 많이 찾아요.” 나른한 오후, 금산농약방에 웃음이 터진다.

▲ 전빛이라 기자가 지역 분점 농약방으로 가야할 자재를 트럭에 싣고 있다.

요즘은 또 다른 고민거리가 있다. 주변에 농약방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어 경쟁에서 밀리기 일쑤다. 업체 대리점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대리점을 그만두고 농약방을 차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 동네 장사다보니 친척이나 이웃이 개업하면 기존 단골들을 잃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 앉아 있을 수 없죠. 경쟁에 밀리지 않으려면 직접 나가서 판매도 해야하고…. 그런데 또 농민회 활동시기가 되면 그것 역시 미룰 수 없어 어려움이 많아요.”

문산읍 분점 소장이 트럭을 몰고 필요한 농자재들을 가지러 왔다. 금산농약방이 본점, 지역마다 5개의 분점이 있다. 본점이 대리점으로부터 물건을 한꺼번에 받고 분점들이 필요한 물량을 이곳에 요청하고 가져가는 구조다. 종이에 빼곡히 적어온 품목들을 수량에 맞춰 트럭에 싣고 다시 문산으로 향했다.

“내 여기 도꾸이야. 도꾸이. 비리약 사러 왔어. 참깨에 예방으로 뿌리려고.” 이 농약방이 오랜 단골이며, 참깨모종에 뿌릴 진딧물약을 구입하기 위해 이곳에 들렀다는 박상갑씨가 들어서면서부터 필요한 품목들을 나열한다.

“참깨는 아직 철이 아니라 안 들어왔어요.” “그럼 상토는 얼마야.” “한 포대 7,000원.” “그거 한 포 줘.” 박씨는 타고 온 오토바이 뒤에 상토 한 포와 몇 가지 농약이 담긴 봉투를 단단히 그러 매고 농약방을 떠났다.

▲ 농약을 반품하러 온 이상열씨로부터 반품 이유를 듣고 있는 전빛이라 기자.

“이거 반품하러 왔어.” 늦은 오후, 이상열씨가 농약방에 들어서며 살충제 다섯 병을 꺼내놓는다. 이씨의 부인이 구입한 약이다. “하우스에 수정벌 넣었는데 이거 쓰려면 벌을 다 빼내고 약 쓰고 나중에 다시 또 넣어야 하잖아. 근데 집사람이 지금 병원에 누워있어. 할 사람이 없어. 나 혼자는 다 못해 힘들어서.” 담담한 이씨의 목소리에 착잡함이 감돈다.

저녁 7시. 해가 지고 농민들의 발걸음이 뜸해지면 농약방의 일상도 마무리된다. 해 뜰 때 시작한 농약방이 농민들의 기쁨, 고민, 걱정, 아픔을 모두 끌어안은 채 오늘의 영업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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