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먹거리 정치의 잠재력을 그리스에서 보다

  • 입력 2015.03.20 12:55
  • 수정 2015.03.20 12:56
  • 기자명 허남혁 (재)지역재단 먹거리정책·교육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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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남혁 (재)지역재단 먹거리정책·교육센터장
그리스의 먹거리 정치 이야기를 발견한건 우연한 일이었다. 올 2월초 일간지에 실린 진보정당 시리자(SYRIZA)의 집권 스토리 속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시리자가 2013년부터 영양부족 어린이들을 구호하는 푸드뱅크인 연대 클럽을 지원했는데, 필요한 먹거리는 농민들에게 정중하게 가난한 이들을 위해 한봉지 감자를 나누는 것은 사회적 의무라고 설득하여 시혜가 아니라 나눔으로 마련한다는 것이다. 흥미가 생겨서 원자료를 찾아보았다.

2008년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이후 구제금융을 받게 되면서 그리스인들은 엄청난 경제적 시련을 겪게 되었다. 복지국가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하면서 아마도 우리나라의 IMF보다도 훨씬 더 가혹한 시간을 겪은 듯 하다. 우리 국민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금모으기 운동을 선택했다면, 그리스인들은 농산물 직거래운동을 선택했다. 생존의 차원에서 먹거리부터 시작해 다양한 품목들의 자구적 물물교환을 자발적으로 시작했는데, 이것이 점차 시민들의 자발적인 경제적 결사체의 결성을 통한 사회적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 첫 시발점이 바로 그리스인들의 주식인 감자를 농민과 도시 소비자 간에 직거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자체가 시청앞 광장을 마련해주고, 인터넷으로 농민과 소비자의 수요 공급량을 미리 맞춰서 정해진 날에 먹거리를 사고판다. 2012년부터 급속하게 활성화된 이런 감자 직거래를 그리스인들은 감자 운동이라고 불렀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영문판에 포테이토 무브먼트 항목이 있다. “그리스의 풀뿌리 사회적 농업운동으로, 이집트의 값싼 수입감자에 대응해 농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감자를 직판한다.”

이것이 점점 올리브 운동, 양고기 운동 등 필수 먹거리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그리스 전역에 농민직거래장터가 수백 개가 생겨났다. 농민도 소비자도 다같이 고통받던 시기에, 중간상인(대형유통업체)을 없애서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자는 직거래를 사회운동 차원에서 전개한 것이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요리사들이 조직을 만들어 빈민들을 위해 음식을 조리하기도 하고, 무료급식소와 푸드뱅크, 꾸러미 등 다양한 먹거리 나눔활동으로 응용하면서, 도시민들의 텃밭활동과 귀농으로 연결되어 나갔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소개한 연대 클럽은 먹거리에서 시작해 지금은 빈민들에게 의약품과 돌봄, 경제상담까지 제공하는 종합적인 지역사회 복지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물론 그리스의 경제적 어려움은 아직 현재진행형이고, 향후 시리자의 미래 역시 그리 밝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리스의 사례는 사회적경제 운동 속에서 먹거리가 갖는 핵심적인 역할을 우리에게도 시사해준다. 우선,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먹거리 문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도 진행형인 무상급식 논쟁은 비록 복지 논쟁이긴 하지만 먹거리 문제이기 때문에 모든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진보정치에 있어서 농업문제와 먹거리복지 문제의 동시적 해결을 위해서는, 양자를 연결시켜주는 먹거리 공급의 사회제도적 메커니즘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농산물 수매나 공공조달 장치를 통한 먹거리복지의 실현 말이다(브라질의 룰라 정부 시절 PAA라는 모범사례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농민운동의 차원에서 농민들이 직접 생산한 먹거리를 자발적으로 나눌 수 있는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 도시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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