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새끼① /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 입력 2015.03.14 10:48
  • 수정 2015.03.14 10:5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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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국민학교 3학년 무렵의 어느 날, 우리 동네에 새끼 꼬는 기계가 처음 들어왔다. 나는 까까머리 동무들과 그 앞에 쪼그려 앉아서, 낱 가닥의 볏짚이 순식간에 새끼줄이 되어 나오는 요술 같은 모습을 넋을 잃고 구경하였다. 기계라고 했지만 단순하였다. 두 개의 조그만 나팔이 나란히 붙어서 회전하고 있었는데, 그 나팔 주둥이에다 각각 볏짚 몇 올씩을 넣으면 두 가닥이 따로따로 돌다가 이윽고 합쳐져서 꼬아지는 방식이었다. 그 기계의 역할을 수 세기 동안 사람의 맨손바닥이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날, 볏짚 두 가닥이 결합하여 새끼줄이 되자면 사전에 각각 낱 가닥인 채로 충분히 몸을 비트는 예비 작업이 있어야 한다는 원리를 깨달았다. 위대한 발견이었다.

손바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경쾌한 소리가 박수라면, 역시 순전히 손바닥만으로 만들 낼 수 있는 가장 오묘한 예술품은 새끼(줄)다. 볏짚의 올을 단순하게 교차하여 땋기만 한다고 새끼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손바닥을 한 번 비빌 때 두 가닥의 올이 각각 낱낱으로 뒤틀리게 되고, 또 한 번 비빌 때 그렇게 뒤틀린 두 가닥이 결합한다. 구분동작으로 설명했지만 사실은 그 두 동작이 손바닥 안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양손에 몇 올씩의 볏짚을 나눠 쥐었다가 손바닥 사이에 넣고 비비는데 왼손바닥을 아래에서 위쪽으로, 오른손 바닥을 위에서 아래쪽으로 비벼 꼬는 새끼를 ‘오른새끼’라 하고 그 반대의 것을 ‘왼새끼’라 한다. 농촌에서 사용하는 대개의 새끼는 모두 오른새끼였지만 악귀를 쫓는 금줄을 만들 때에는 반드시 왼새끼만을 사용하였다.

오른 손잡이가 왼새끼를 꼬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고 꼬아놓은 새끼도 어딘지 엉성하였다. 내 둘째 동생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왼새끼를 꼬면서 연신 싱글거렸다. 거기에다 숯과 빨간 고추를 끼워서 사립에 금줄로 내걸면서도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들만 내리 셋을 낳았으니 어깨에 힘을 줄만도 하였다. 그러나 넷째 동생이 또 아들이었을 때 아버지는 왼새끼를 꼬면서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새끼 꼬기는 주로 비오는 날 낮에 하거나 아니면 초저녁에 했는데, 내 아버지는 꼼꼼한 성품이 아닌 데다 성질이 급한 편이어서 동작은 빨랐으되 꼬아 놓은 새끼줄을 보면 이웃집 영길이 아버지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엉성하였다. 새끼줄에 덕지덕지 잔털이 돋아 있어서 그것을 떼 내는 일을 어린 내가 해야 했다.

아버지는 두 손바닥을 한 차례 공중으로 비벼 올려 서너 뼘의 새끼줄이 만들어질 때마다 엉덩이를 한 번 들썩였고, 난 아버지 등 뒤에 앉아 있다가 꼬아진 만큼의 새끼줄을 잡아 당겨 사려야 했다. 그건 참 재미없는 노동이어서 잠깐 만에 하품이 났다. 새끼 꼬는 날이면 부자간에 이런 말이 오가기 일쑤였다.

“야, 이놈아! 꼬는 족족 싸게 싸게 안 잡어댕기고 뭣 하는 것이여?”

“앗다, 아부지가 똥구멍을 들어줘야 샌나꾸를 빼내제라우!”

나는 신경질이 나서 그까짓 새끼줄 따위, 내가 직접 꼬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손바닥이 크고 힘이 세어야 낱 가닥을 충분히 비벼 꼴 텐데 여남은 살 조막손으로는 어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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