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베스트 프렌즈’

늙은 농부와 나이 든 소의 봄맞이 쟁기질

  • 입력 2015.03.08 22:40
  • 수정 2015.03.08 22:41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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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워~워~,” 쟁기를 손에 쥔 농부의 외마디 외침이 바람소리마저 잠잠한 들녘에 울려 퍼진다. 농부가 이끄는 대로 논갈이에 나선 소는 한 발짝 내딛기도 버거운 듯 허연 콧김, 입김을 토해내며 논에 고인 물을 튕겨낸다. “지푸라기가 많아서 쟁기가 안 나가기도 하지만 이놈이 오늘은 영 일하기가 싫은가벼.” 뜻한 바대로 수월하게 쟁기질이 되지 않자 농부의 푸념같은 지청구가 이어진다. 답답한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가 내딛는 걸음걸음은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

지난달 24일 전남 장흥군 장평면 축내리의 한 들녘, 겨우내 얼었던 논이 질퍽거리는 수준까지 녹자 봄맞이 소쟁기질에 나선 조성옥(72)씨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남들은 트랙터로 짧은 시간에 끝낼 일을 소와 씨름해가며 반나절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논고랑을 오고가기를 수십 번, 겨울의 흔적만큼 남은 쌀쌀한 날씨를 이겨내고자 소주 한 잔을 털어 넣기 위해 조씨가 잠시 쟁기질을 멈춘다. 이때다 싶은 소는 깊은 울음을 토해내며 숨을 헐떡거린다.

“이놈이 내 두 번 째 소라. 함께한 세월만도 30여년이 넘었지. 이제 다시 새 소를 길들일 수도 없고. 서로 할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골격이 툭툭 불거진 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넋두리하던 그가 잠시 말을 멈춘다. 종이컵에 담긴 소주를 마저 비운 뒤 그가 말을 잇는다. “저놈도 이제 늙어서 먹이를 줘도 살이 안 붙어. 이빨이 다 닳아서 지푸라기도 못 먹고. 그래도 이 소가 내게 돈을 벌어다 준 녀석인데. 보고 있자면 안쓰럽지.”

고단한 세월동안 남의 기계를 빌리는 불편함도, 농사의 때를 놓치는 아쉬움도 모두 잊게 해준 소였다. 그렇기에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엔 고마움과 더불어 애틋함이 배어있다. 짧은 쉼을 뒤로 하고 그가 다시 쟁기를 손에 쥔다. 소는 이미 알았다는 듯이 우직한 발걸음을 논으로 내딛는다. “워~워~.” 나이 든 소를 향한 늙은 농부의 외침이 들녘에 다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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