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은 늘상 말한다. “나는 아직 마음은 젊다.” 그렇다. 노인들의 마음 속 푸르름은 젊은이들 못지않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살면 언제까지 살겠느냐” 하는 우울한 정서를 내포하고 있다. 예금 만기가 되어 은행을 찾은 노인에게 직원이 만기 1년 연장을 권하자 노인이 화를 버럭 냈다고 한다. 노인에게는 만기 1년이 앞으로 살 수 있을지 아님 세상을 떠났을지 모르는 일인데 그런 쓸데없는 걸 권한다며 직원을 타박한 것이다. 노인 정서에 깔리는 우울함은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의 숙명 아니겠는가.
하지만 해마다 급격하게 증가하는 노인의 자살문제는 최근 사회문제가 될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치매에 걸린 배우자를 지극정성 돌보던 노인이 결국 긴 투병을 이기지 못해 배우자를 살해하고 자살을 택하는 가슴 아픈 신문기사를 여러 번 보았던 기억이 난다.
노인들은 사실상 대부분 신체적 변화가 주요 원인이 되어 우울함을 느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저기 몸이 아픈 증상이 늘고 뚜렷한 완치법이 없는 퇴행성 관절염 등에 시달리게 된다. 기억력 또한 이전보다 급격히 떨어지면서 ‘치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심각한 우울감을 겪게 된다. 게다가 통계청에 의하면 노후준비를 못한 노인이 다수이며, 은퇴 후 경제적으로 급격히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노인들은 가족으로부터 사랑받기는커녕 단절되거나 소외되는 경우가 많고 은퇴 후 사회적으로 단절되어 정신적인 우울함은 커질 수밖에 없다.
노인의 우울증은 본인 건강상태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을 많이 하게끔 한다. 또 우울감의 기본 증상 이외에 불면증이나 초조함 등의 증상을 보인다. 망상 같은 정신병적 양상을 보이는 경우도 흔하다. 망상의 주된 내용은 ‘다 나 때문이다’라는 등의 죄책감 또는 지나친 건강염려증 등이다. 노인의 우울증에서는 집중력과 기억력의 뚜렷한 저하가 나타난다. 노인의 우울증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인지기능의 저하를 가성치매, 우울증의 치매 증후군이라고 한다. 가성치매를 단순히 우울증이 심해서 나타나는 기본 증상 정도로 간주했으나 최근에는 노인에게 우울증이 발생할 경우 치매와 같은 인지기능의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연구가 있었다. 다만 우울증으로 인한 치매증상은 알츠하이머치매처럼 계속 악화되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 치료에 의해 회복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신체기능과 뇌기능의 저하는 우울증을 유발하는 주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생활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서도 우울함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는 상태가 된다. 심혈관 질환들은 직접적으로 우울증을 유발하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 각종 질환으로 늘어나는 복용약이 신체에 여러 가지 영향을 끼칠 수 도 있다.
노인의 우울증은 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항우울제에만 의존하여 고칠 수 있는 단일한 양상도 아니고 간단한 문제도 아니다. 노인 우울증에 대한 가족의 사랑과 사회적 관심이 가장 기본이 돼야 한다. 은퇴 후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 줄 수 있는 복지도 뒷받침 돼야 한다. 이는 노인 노동 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이 가져다주는 사회와의 연결 고리는 노인이 청년처럼 활기차게 살 수 있는 정서적 도움을 줄 것이며 더불어 경제적 기회와 자신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제든지 따뜻하게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한의사로서 환자를 보다보면, 어르신의 말을 차근차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환자분의 몸과 마음을 이전보다 낫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노인에게도 스무살이 있었다. 처음부터 노인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