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10회

  • 입력 2015.03.08 12:11
  • 수정 2015.03.08 12:18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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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은 정말로 호중의 멱살을 잡고 그의 집으로 가서 한 바탕 난리를 피웠다. 선택이 그런 삼촌을 구슬리고 다른 일가붙이들까지 나서서 겨우 삼촌의 노여움이 풀렸다. 말린다고 했지만 실상 정씨가의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삼촌의 편을 들어 천호중의 집안을 혼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일로 기가 죽은 호중은 이튿날 바로 군대로 돌아갔고 얼마 안가 제대를 했다. 그리고 마음껏 허세를 부리던 모습은 간 데 없이 얼마 안 되는 농사에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 일러스트 박홍규

호중이 제대하기 두어 달 전, 한창 봄 농사에 바쁠 때에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군인들이 나라를 뒤집어 엎었다는 소식이었다. 마을의 오종 대에 달린 스피커에서 하루 종일 똑같은 뉴스를 전했지만 그 뜻을 제대로 새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대체 이게 뭔 말이래? 군인덜이 일어나서 핵맹을 했다는데, 핵맹이 뭐여?”

잡음이 많이 섞여 잘 알아듣기도 어려운 스피커에서는 혁명 공약을 줄줄이 발표하고 있었다. 선택으로서도 놀랍기만 했다. 혁명이라, 그것은 입에 올리기도 두려운 단어가 아니었던가. 청년회 내에서 독서모임을 하면서 몇 차례 들어보기는 했었다. 러시아나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이야기할 수 있던 사람은 노영재를 비롯한 서울대학교의 이론가들이었다. 모르는 것을 배운다는 심정으로 듣고만 있었을 뿐 딱히 그에 대해서 공부를 한다거나 관심을 두지는 않았었다. 그래도 그 때의 조마조마하던 분위기는 잊을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혁명이란 단어는 낯설고도 무서운 단어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군인들이 혁명을 일으켰다니, 선택은 막연한 불안을 안고 신문을 구해 읽어보았다. 그나마 제대로 된 정보가 실린 곳은 신문 외에는 없었다. 재열이나 임상호에게 편지를 하고 싶었지만 불안한 시국에서 편지를 쓰는 일도 조심해야 했다.

“선택아, 암만해도 나라가 어찌 될라는갑다. 나야 암것도 몰르지만 핵맹이라는 기 뭔지는 들어봤지 않냐? 해방되구 날마다 몰려댕김서 떠들던 축에도 잠깐 끼어보았구.” 저녁상을 물린 삼촌이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추었다. 삼촌이 해방 후에 면내의 젊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그것을 동티로 보도연맹까지 가입했던 걸 선택도 알고 있었다. 삼촌은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면내에서 그 일로 목숨을 잃은 이가 수십 명이었다. 그 때 삼촌이 들었던 것은 사회주의 혁명이었을 것이었다.

“삼촌, 제가 신문에 난 걸 자세히 읽어보니까 이번에 군인들이 한 혁명은, 뭐랄까요,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우선 반공을 내세우고 있으니까 삼촌이 들었던 그런 혁명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 같아요. 혁명이라는 말은 아주 우리 사회를 근본부터 바꾸겠다는 뜻인 거 같고요.” “그러니께 말이여, 나라럴 근본부터 바꾼다는 기 뭔 말이여? 작년에 이승만이 쫓아낸 사람덜하구 이 군인덜하구 동패란 거여, 아니면 서로 다른 패란 거여?”

“글쎄요, 우선 군인들이 하는 말은 지금의 민주당 정부가 무능하고 부패해서 나라를 맡길 수 없다, 이런 얘긴데요. 지난 사일구 때와는 아무래도 다르다고 봐야죠. 그 때는 학생과 일반인들이 나선 거고, 이번에는 총칼을 든 군인들이 나선 거니까.”

선택도 그 정도 말고는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신문에 난 이야기들을 모두 읽긴 했어도 신문이라는 걸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혁명이 성공했다면 그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 말고는 제대로 쓰지 못할 것이 뻔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사회가 안정 되는대로 민간에 권력을 넘기고 다시 군문으로 돌아가겠다고 거듭 약속하는 것을 보며 선택은 이번에 혁명을 일으킨 군인들에게 어쩐지 호감이 느껴졌다.

나라가 뒤집혔다고 했지만 마을에는 별 다른 일이 없었다. 논농사가 닥쳐왔으므로 날마다 못자리를 둘러보고 논에 물을 대느라 서로 악다구니를 하며 여름날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라운 손님이 선택을 찾아왔다. 수원의 농업사무소에서 함께 일을 하던 권순천이라는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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