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마을회관 옆을 지나오며

  • 입력 2015.03.07 12:30
  • 수정 2015.03.07 12:32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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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마을마다 마을회관이 있습니다. 마을회관은 마을의 대소사가 이뤄지는 곳입니다. 면체육대회 음식준비나, 음력 10월 마을 동제 때, 또 연말 마을대동회 때면 마을회관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넉넉히 먹을 음식을 장만하여 푸짐하게 나눕니다. 때문에 마을회관 창고에는 왠만한 식당 만큼의 조리기구들이 정돈돼 있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앉아 먹을 수 있는 교자상이며 접시와 그릇, 수저 등이 말끔하게 쌓여져 있습니다.

마을회관 창고에 차곡차곡 정리된 그릇을 보노라면 마을회관 공용물품도 세상의 변화를 고스란히 겪어 왔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써오던 무거운 쇠그릇에서 간편한 플라스틱 용기까지 가지런히 정리돼 있습니다. 바로 부녀회원들의 손에서 손으로 정리돼 온 것입니다. 부녀회원들은 마을물품을 관리하는 것을 아주 조직적으로 잘 합니다. 해마다 연말이면 부녀회장도 뽑고 더불어 마을물품관리자도 같이 뽑습니다. 물품관리자는 숟가락과 밥그릇 개수까지 정확하게 인수받아서 한 해동안 잘 관리해서 차기년도 책임자에게 다시 인수해줍니다. 마을공용물품을 정리한 대장은 몇 년을 썼는지 누렇게 변색이 되어서는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마을 행사 때면 책임자가 먼저 나와서 숟가락과 밥그릇을 정확하게 세어서 출고하고 일이 마무리 되면 다시 입고하여 꼼꼼하게 관리합니다. 미련한 생각으로는 그까짓 것 대충 세고 대충 넘겨주면 될 것이지 그릇 같은 것이 얼마나 한다고 저 유난을 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밥그릇이 모자라거나 숟가락이 없어지면 담당자가 자기의 관리부실이라며 다시 사 넣습니다. 사람들이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해도 자기 책임을 스스로 엄격하게 물으며 마을을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을회관 창고에 그득히 쌓여있는 그릇들이 부녀회원들의 지극한 정성과 책임 속에서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당연지사 그렇게 되는 줄로만 여기겠지만 그 하나의 책임도 소홀히 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알뜰히 챙기기 때문에 공용물품이지만 분실되지 않고 매번 필요할 때마다 제 구실을 톡톡히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마을의 중요한 의결을 할 때 부녀회원들의 입장은 그다지 중요하게 간주되지 않습니다. 마을의 대소사는 주로 마을 개발위원들에 의해 결정되는데 개발위원들은 주로 남성어른들이 맡습니다. 물론 여성들도 할 수 있고 해야 되지만 너무도 긴 세월을 그렇게 살아오면서 이제 여성 스스로도 무엇을 결정하는데 나서기를 주저합니다. 무경험은 무능을 낳고 무능은 배제를 낳아 그렇게 소외되고 있습니다. 이 개명천지에 아직도 농촌마을 곳곳은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미진합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문제임을, 개선해야 함을 말하는 이가 적습니다. 마을의 대소사를 챙기는 그 수고로운 일은 도맡아서 잘도 하는데 말입니다.

마을 공용물품을 관리해 내는 그 능력으로 여성농민들이 마을운영에 적극 앞장 서는 새로운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마을회관 옆을 지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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