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목반에 가입하며

  • 입력 2015.03.01 20:57
  • 수정 2015.03.01 21:06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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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 구점숙(경남 남해군 삼동면)

집 뒤 경사진 언덕에 100평에서 200평 사이의 자그마한 밭들이 많습니다. 하다보니 농사철이면 그야말로 풀과의 전쟁입니다. 게다가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농민운동하면서 친환경에 관심을 조금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설픈 환경지기가 되어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다보니 일은 일대로 많고 풀은 풀대로 많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농사도 풀과 경쟁해서 잘 견디는 그런 종류를 선호하게 됩니다. 그러던 차에 인근 마을의 언니가 호박농사를 권했습니다. 김매기를 덜 해도 된다하니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요

지역농협에 호박작목반이 있습니다. 작목반에 가입하는 것이 작은 소원이었던 차에 나는 호박농사를 준비하면서 주저 없이 가입했습니다. 물론 모종 값의 일부를 지원해주는 부차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작목반 총회를 앞두고의 설렘은 얼추 소풍가는 것 비슷했습니다. 비로소 농민이 된 듯도 하고, 나의 꿈을 하나하나 실현해 가는 듯한 보람도 있는 것이 보통이상의 감정이었습니다.

사실 농가에서 작목반 가입하는 것쯤이야 별다른 보람이나 의미가 붙을 것도 없을 것입니다. 작목반도 작목반 나름인지라 어느 정도의 농사과정을 공유하느냐가 중요하겠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이 그냥 작목반에 이름 하나 올리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농사가 농가단위로 이뤄지다보니 농가 내의 모든 종사자에게 농민으로서의 권리가 똑같은 크기로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기상이 좋은 여성농민의 경우에는 능동적인 참여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남성이 농가를 대표하는 바, 농사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농사에 관한 전 과정에서 여성농민들은 소외되는 측면이 많습니다. 농사에서 참 중요한 많은 일을 하며서도 말입니다.

그러니 어쨋거나 작목반이나 생산자조직에 여성농민이 직접 가입하는 것이 농민으로서 자기자리를 찾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호박작목반에는 남자어른(?)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비교적 젊은 여성이 작목반에 가입하겠다하니까 자꾸 눈길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애써 피하지는 않았습니다. 내심 부끄러우면서도 마치 여성농민을 대표하는 그 무엇처럼 당당하게 시선응대를 하였습니다. 그 틈에서 아직은 중요한 발언을 꺼내는 것도 다른 의견을 던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차피 작목반 내에서의 활동은 신뢰가 더 우선되어야하므로 더 많은 시간을 같이하며 관계를 맺어야 최소한의 역할을 할 수 있겠지요. 이제 그 첫발을 내 딛고 간다는 것에 못내 우쭐거려집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지역사회에 발을 디뎌 봅니다. 여성농민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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