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우리 농업이 참 불쌍하다

  • 입력 2015.02.28 15:15
  • 수정 2015.03.01 18:44
  • 기자명 김호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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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 단국대 교수

수십조 원의 공익적·다원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우리 농업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60년대 경제성장 시기부터 요즈음 개방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농업은 늘 희생양이 되어 왔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는 소비자는 66.2%이고, 국가는 국민의 식량안보를 위해 최대한 농업을 보호하고 지킬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93.5%에 달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우리 농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이루어졌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농업이 참 불쌍한 이유 중 하나는 정책 책임자의 구태의연한 농정패러다임과 농정철학의 부재이다. 농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가격과 소득안정이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미국이나 EU 등 농업선진국의 농정패러다임은 효율성주의에서 벗어나 지역주의와 환경주의 관점에 입각한 농가소득안정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효율성 향상과 경쟁력 제고 관점에서 한 발짝도 못 나오고 있다. 경쟁보다는 협동의 힘이 더 강하다는 인간사회의 근본원리를 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한-중 FTA가 성공적으로 타결됐다는 터무니없는 말도 하고 있다. FTA가 타결되지 않은 2013년에 중국으로부터의 농산물 수입물량은 680만여 톤으로서 단일국으로는 가장 많은 양이다. FTA가 발효되면 엄청난 물량이 수입될 것은 불 보듯 훤한 일이다. 중국과 교역에서 제조업은 만성적인 흑자이고 농업은 일방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보이고 있다. 제조업을 위해 농업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정부의 관점은 변하지 않고 있다. 무역이득공유제 법안이 제출되어 있지만 이를 통과시키지 않고 있는 주체는 정부이다. 누룽지가 퉁퉁 불어터지고 있다. 이렇게 불어터진 누룽지를 먹고도 힘을 내고 있는 우리 농업이 참 불쌍하다.

쥐꼬리만한 자체 예산으로 농업정책을 수립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는 지자체의 노력도 눈물겹다. 충남의 3농혁신이나 제주도의 농정분야 12대 핵심정책은 지역농업을 지키겠다는 광역지자체의 의지이지만, 한정된 예산 때문에 정책효과의 극대화는 구조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충남의 3농혁신은 농업문제의 해결 없이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기치아래, 농민이 정책의 주체이고 지자체는 지원 주체로서 농정의 수립-시행-평가를 민·관이 함께 해보자는 것이다. 제주도는 농업이 미래성장이다 라는 주제로 지대별 작부체계의 구축과 보리수매 차액보전을 추진하고 있다. 지자체 농정의 핵심은 농가의 소득안정에 두어야 한다. 하지만 지자체의 재정여력으로는 힘이 부칠 것이다. 중앙정부 농업예산의 상당부분을 지자체에 이관하는 재정혁신이 필요하다.

금년에 농업문제의 핵은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이다. 3월중 타결 설이 나오고 있다. TPP는 미국을 중심으로 태평양 인근 12개국이 참여하는 그룹FTA로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호주, 페루, 베트남, 말레이시아, 멕시코, 캐나다, 일본이 참가하고 있다. TPP는 예외 없는 관세철폐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후발 참여국인 우리나라는 협상당사국 12개국의 타결 내용을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 그래서 TPP에 가입하게 되면 쌀을 예외로 하거나 고율관세 부과는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우리 농업이 더욱 불쌍해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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