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생각나는 대정리 할매들의 콩유과

  • 입력 2015.02.15 01:08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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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시월상달엔 5대 이상의 조상 산소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그 제사를 시제라고 한다. 지금은 시제를 구경하지도 못하고 지내지만 어렸을 때 외가에 가면 외할머니가 시제의 음식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시제 음식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유일하게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은 과질(현재의 유과)이었다.

찹쌀을 한 달 정도 물에 담가 발효시켜서 만드는 것으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음식이 유과인데 발효를 통해 부드러운 질감과 특별한 향과 맛을 가진다. 찹쌀을 삭히고 아랫목에 말리는 작업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이므로 마을의 여자 어른들 누구나 하는 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외할머니의 유과 솜씨는 이웃마을까지 소문이 나서 추수가 시작되면 시제 준비를 위해 일을 미리 부탁하러 오곤 하였다. 시월상달은 날이 제법 차서 시제음식을 준비하는 날엔 부엌으로 마당으로 들락거리는 일이 귀찮기도 하였지만 어린 나는 유과 부스러기 얻어먹는 맛에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 같다.

▲ 콩유과
시제 이후 유과를 먹을 수 있는 때는 설 때다. 설을 위해 할머니는 또다시 찹쌀을 삭히시고 세찬 준비를 하기 전에 유과는 미리 만들어 빈 항아리 속에 차곡차곡 담아두셨다. 가래떡을 미리 뽑아 떡국을 끓이기 위해 굳히는 일도 잊지 않고 하셨지만 나의 관심은 오로지 약과나 유과 등에 가 있었다. 외할머니의 유과는 정말 특별해서 입에 넣으면 기름의 풍미를 풍기는 바삭함에 이어 혀로 녹아드는 유과 속의 부드러움이 조청의 단맛을 입고 있었다. 날이 따뜻해지면 유과는 눅어 늘어지므로 대개 정월대보름 전후까지만 먹었었다. 장독대에 보관했던 굳은 인절미를 화롯불에 구워 조청에 찍어먹으라 주실 때도 나는 오로지 유과만을 원하곤 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사먹을 돈도 없던 때였지만 돈이 있어도 사먹을 수 없던 아주 귀한 음식이라 더욱 간절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다가 대학을 들어가고 그곳에서 약과와 매작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종강을 하고 겨울방학이 되어 외가를 방문한 나는 하루 종일 약과와 매작과를 만들어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두고 돌아왔었다. 그동안 할머니가 해주시던 겨울 간식을 이제 내가 해드릴 테니 겨우내 간식으로 드시라 말씀드렸었다. 그리고 나중에 꼭 시간을 내서 올 테니 과질 만드는 법을 나에게 전수해주시라 부탁도 드렸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음 해 싸리꽃이라 불렀던 조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무렵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평생을 사셨던 춘천을 떠나 서울의 외삼촌댁으로 거처를 옮기셨고 나는 할머니로부터 유과를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고 할머니도 세상을 떠나셨다. 명절에 선물로 들어오거나 제사나 차례를 지내기 위해 사는 유과는 할머니 생각에 제대로 맛을 느끼지 못하고 먹어왔다. 마을에 슬로공동체 거점공간이 마련되었다. 공간 마련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는 날 대정리에서 마을 할머니들이 만드신 콩유과 한 박스를 가져오셨다. 공장에서 대량생산되어 나온 것이 아니라 못생기고 거칠지만 덜 달고 구수하다. 부드러움은 외할머니의 찹쌀유과에 비길 바가 아니지만 콩의 고소함이 담겨 겨울철 간식으로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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