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어떤 세월 7회

  • 입력 2015.02.08 12:42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겨울이 다 가도록 선택은 면내의 여러 청년들을 만나고 다녔다. 차분히 책이나 읽으려던 계획은 어느새 고향에서 농촌운동을 해보자는 쪽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별로 배움이 없고 농촌운동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는 이들이 대다수였지만 무언가 변화에 대한 열망이 피어나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고인 물처럼 변화가 없던 농촌에 그들이 새로운 활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윗세대들은 그들대로 젊은이들이 날뛴다며 혀를 찼지만 어차피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기 마련이었다. 젊은이들끼리 뭉치는 일이 잦아지자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정보가 교환되고 농사짓는 일부터 마을 일을 해나가는 데까지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그런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택은 제일 많이 배운 사람이었다. 어차피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이인지라 그들도 스스럼없이 선택을 자신들 속에 받아주었다. 고향의 젊은이들과 어울리며 선택도 긴긴 겨울밤에 두부찌개나 묵무침을 놓고 막걸리 마시는 재미도 알게 되었다. 그런 선택을 바라보는 삼촌이나 어머니의 눈길이 고울 리 없었다.

“조카, 어쩔 셈이여? 조카가 워째 갸덜 같은 생판 농사꾼덜하구 어울리는 겨? 봄 되믄 다시 서울로 갈려고 했던 거 아녀? 전에 댕기던 직장은 또 워떻게 된 거구?”

삼촌이나 어머니는 여전히 군대 가기 전에 다녔던 수원의 권업장이 정식 공무원인 줄로 알고 있었다. 이제는 아퀴를 지어야 했다.

“어머니, 글고 작은 아버지, 제가 여러 모로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아무래도 고향에서 일을 해봐야겠어요. 앞으로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젊은이들이 농촌을 새롭게 바꾸어야만 돼요. 어차피 제가 장남이고 집안을 건사해야 되니까 고향에서 할 일을 찾아보겠어요.” 당장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펄쩍 뛸 것 같아서 애써 돌려 말했다.

“허긴 여기서두 할 일이야 있지. 아닌 말로 지난번에 민의원 된 사람덜하구 비교해봐두 우리 조카가 훨씬 낫지. 선택이가 여기 산다고 허믄 면서기쯤이야 당장 되지 않겠어. 그렇쥬, 형수님.”

언제나 선택을 과대평가하는 삼촌은 선택이 고향에서 공무원이라도 하려는 것으로 지레짐작을 하고 있었다. 선택도 농촌운동을 하는 사람이면 꼭 농사를 전업으로 지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원의 권업장 같은 말단 행정직이라도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 농민들과 일을 해나가기에 더 수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다만 고향 마을에 할 만한 직업이라곤 공무원 아니면 학교 교사 정도였는데, 그쪽으로는 가기 싫었다. 직업을 갖더라도 농촌운동에 관련한 것을 가지고 싶었다.

그도 저도 아니고 아예 땅을 파먹는 농투성이로 살면서 농촌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딘지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속에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배울 만큼은 배운 사람이라는 은근한 자부심이 배어있을 터였다. 사실 선택이 어울리는 반장이니, 면내의 청년이니 하는 젊은이들 중에는 중학교를 나온 이조차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초등학교만 마쳤어도 평균은 되었고 그나마 중동무이거나 어쩌다 서당에서 천자문을 겨우 떼고서 누가 물을라치면 ‘구학문’을 했노라고 낯간지러운 답을 하는 정도였다.

“작은 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기회를 봐가면서 잘 알아서 할게요.”

수심이 가득한 어머니의 얼굴에 우선은 그렇게 눙쳐놓는 수밖에 없었다.

“집안 살림이 에렵다. 느 작은 아버지가 도맡아서 농사를 짓는데 알다시피 많은 식솔을 거느릴 만한 농토가 아니지 않느냐. 하여간 잘 알아서 혀라.”

어머니의 말끝에 삼촌이 뜻하지 않은 말을 꺼냈다.

“글고, 우리 장조카두 장가 들 생각을 혀야지. 벌써 이른 나이가 아니구만.”

아직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긴 했지만 선택의 나이가 꽤 찬 것도 사실이었다. 동갑내기들 중에는 벌써 두엇씩 애들이 딸리기가 예사였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