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진단부터 다시 하라

  • 입력 2015.01.25 22:22
  • 수정 2015.01.25 22:23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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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의 미래성장산업화’ 세부 실천계획을 본다. 지난 13일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업무보고한 농업분야 경제혁신 3개년계획의 핵심적인 내용들이다.

6차산업화로 일자리‧부가가치 창출, 첨단화·규모화로 경쟁력 강화, 현장 정예인력 육성, FTA를 활용한 수출확대, 행복한 농촌 만들기 등 ‘행여 이렇게만 된다면’ 농업의 장밋빛 미래를 그려볼 수도 있겠다 싶은 내용들이 한 가득이다.

그런데 눈으로 읽는데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된다. 생경하다. 긍정적인 단어로 점철된 문장과 문장을 읽는데 ‘이게 과연 농업의 미래성장을 위한 것인지’ 연신 도리질을 치게 된다. 갑오년 2갑자라 농민들 또한 의미를 두고자 했던 2014년은 농민들에게 최악의 한 해였다.

연초부터 폭락한 농산물값은 회복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채 연말까지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는 중국, 영연방의 나라들과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FTA를 연이어 체결했다. 농민의 절망감에 대못을 박은 쌀 전면 개방 선언은 개방농정을 택한 정부의 화룡점정, ‘신의 한 수’였다.

그래서였다. ‘농업의 미래성장산업화’를 보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 이 땅 농촌의 현실이 철저히 외면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경제야”라고 말했던, 한 외국 대통령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농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팔아서 이득이냐 손해를 따져볼 수 있는 농산물 값, 바로 가격 안정의 문제다.

내 손에 쥔 돈이 얼마냐에 따라 농협 빚도 갚고 자녀들 학원도 보내면서 소박한 미래를 꿈꾸며 버티는 게 농민들이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농산물 가격보장을 위한 정책은 일언반구 없이 6차산업이니, 첨단화‧규모화니, 수출확대니 하는 감언이설만 늘어놓은 것이다.

구제역으로 돼지를 묻은 용인 농민에게, 설 명절 이후의 딸기 가격을 고민하는 부여 농민에게, 여든이 넘은 나이에 한겨울 농토에서 냉이를 캐는 홍성 농민에게 정부가 발표한 ‘농업의 미래성장산업화’가 가당키나 한가. 올해 농사는 무엇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근심에 쌓여 있는 농민들에게 위로는 못해 줄망정 현란한 단어와 문장들을 늘어놓으며 미래성장을 운운하는 정부의 행태는 ‘목불인견’에 다름 아니다.

어느덧 농사를 짓기 위해 ‘각오’가 필요한 시대가 왔다. 그리고 그 각오는 오로지 농민의 몫이다. 농산물값이 떨어져도 이 악물고 버텨내겠다는 각오, 정부가 맹세했던 쌀 관세율 513%가 무너져도 감내하겠다는 각오 없이는 하루가 다르게 농업‧농촌‧농민을 옥죄어오는 환경을 이겨낼 수가 없다. 상황이 이럴진대 ‘농업의 미래성장산업화’라. 정녕 ‘비정상의 정상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현실 진단부터 다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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