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 검고 속 푸른 곡식 너 뿐인가 한다

  • 입력 2015.01.17 11:32
  • 수정 2015.01.17 11:33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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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식재료를 구입하는 방식을 생각하니 꽤나 복잡하다. 한살림, 두레생협 등 소비자협동조합을 통해 구입하는 경우도 있고 재래시장엘 가기도 하고 대형마트에도 자주 간다. 가끔은 인근의 오일장에도 어슬렁거린다. 그 중 내가 가장 특별하게 생각하는 구입방식은 농부와의 직거래다. 하는 일의 특성상 식재료를 구입 하는 횟수나 양이 많으므로 식재료 구입은 나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이다.

수많은 식재료 중 가장 많은 양을 구입하는 것은 단연 고추와 콩이다. 일 년 내내 장 담그기와 고추장 담그기 교육을 하려면 필요한 재료이기 때문이다. 대개는 마을의 농부나 잘 알고 지내는 농부들로부터 계약재배 비슷한 형식을 통해 구입을 하는 것이 가장 믿을 수 있어 선호하는 방식이다. 농부와의 직거래는 생산자는 소비자의 얼굴을 알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얼굴을 알게 할 뿐 아니라 소비자를 공동의 생산자로 인식하게 하는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하게 한다.

▲ 서리태콩밥
콩이나 고추처럼 대량으로 구입하는 것 외에 일상에서 소소하게 밥상에 올리는 식재료를 농부로부터 직접 받아서 쓰는 것의 가짓수가 꽤 많다. Farm to table이라는 새로운 말이 생겨나고 여러 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고 농장에서 바로 올라온 신선한 재료들로 조리하는 재미들이 상품으로 모여진 것이 꾸러미일 것이다. 우리 가족은 농촌에 살기 때문에 꾸러미를 주기적으로 받지는 않지만 농사를 하는 집이 아니라서 파 한 뿌리도 사서 먹기 때문에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농부들로부터 수많은 식재료를 받아서 먹는다. 주식인 쌀과 잡곡들에서 양념에 이르는 작은 깨알들까지 온다. 이런 거래에는 덤이라는 따뜻함도 같이 오는데 주문한 것보다 많이 보내주는 양적인 넉넉함도 있지만 이런 농산물도 있으니 좀 먹어보라는 다양한 넉넉함도 온다. 메주콩을 보내면서 검은콩과 붉은팥을 한 줌씩 보내주는 재미가 같이 오는 것이다.

늦가을에 보은에 정착해 사는 지인의 메주콩을 샀는데 그 속에 묻혀 따라온 청태(서리태) 봉지에는 얼마 안 되지만 밥에 놓아먹으라는 편지도 들어 있었다. 잡티 하나 없이 담긴 콩을 보니 농가의 늦가을 밤 밥상 위에 한 줌씩 얹어 콩 고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농부의 편지대로 나는 서리태 한 줌을 넣고 밥을 한다. 검은색 물이 빠지는 것이 아까워 얼른 씻어 30분간 불리고 쌀과 함께 압력솥밥을 짓는다.

뜸이 들고 뚜껑을 여니 서리태의 검은빛깔이 쌀로 옮겨가 밥은 전체적으로 엷은 검은빛을 띠고 콩알들의 짙은 검은색이 포인트가 되어 절로 식욕을 자극한다. 주걱으로 밥을 고루 섞다가 참지 못하고 입으로 가져간다. 쌀알은 서리태의 고소한 맛이 더해져 더 달고 쌀알 하나하나가 살아있다. 콩은 푹 불리지 않아 적당한 탄력을 가지고 쌀의 단맛이 더해져 더 고소하다. 서리태콩밥이 어떻게 건강에 좋은지 몰라도 좋을 맛이 밥그릇에 담기니 잘 익은 김장김치 하나로도 왕후장상의 밥상이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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