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입력 2015.01.11 12:16
  • 수정 2015.01.11 12:20
  • 기자명 김정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식량주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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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식량주권위원장

우스갯소리로 세상에는 많은 뻔한 거짓말이 있다고 한다.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 받은 어르신들이 하는 말 “에구…괜찮은데”, 아파트 신규 분양 광고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 간호사 “이 주사 하나도 안 아파요” 등. 아는 사람 중에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이 있다. 뒤늦게 사실을 알고 나면 처음에는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당황스럽거나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화가 났으나 요즘은 대부분 헛웃음으로 날린다. 왜냐하면 뻔한 거짓말이나 들으면 바로 탄로 나는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허언증이라는 병도 있다니 그 병에 걸린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잊어버린다.

허언증이라는 병적인 거짓말이 아니라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속여서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나 자신의 부족함을 은폐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서 등이다. 만약 정치인이 자신이 한 말이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국민들 앞에서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올해부터 쌀 수입이 자유화됐다. 513%의 관세만 물면 누구나 자유롭게 쌀을 수입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의 주식이자 삼천년을 지켜 온 쌀 농사를 포기 할 수도 있는 중차대한 문제를 국민과의 협의나 국회의 동의 없이 정부의 일방적인 한 마디의 선언으로 결정해 버렸다. 대신 두 가지를 국민들 앞에 약속했다. 하나는 “513% 관세율을 지키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든 통상 협상에서 쌀을 제외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정부가 약속한 것을 지키기엔 쉽지 않아 보이고 어쩌면 정부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거짓말’로 국민의 눈과 귀를 현혹시킨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부가 WTO에 제시한 양허안에 대해서 미국과 중국 등 5개 국가가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정부는 어떻게든 513%를 지키겠다고 하지만, 지킬 방법이 뚜렷하지 않다. 매번 협상을 할 때마다 정부는 늘 그랬다. 농업을 지키기 위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그렇지만 결과는 늘 다른 산업부문의 이익을 위해 농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상황이 이쯤 되니 정부의 ‘뻔한 거짓말’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현실이 될까 두렵다.

TPP 협상도 최종 타결을 앞두고 쌀이 협상테이블에 오르게 될 것이다. 정부가 얘기한 두 번째 약속, 모든 통상 협상에서 쌀을 제외하겠다는 약속은 잘 지켜질까? 상대방이 요구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쌀을 지키기 위해 모든 협상을 뒤집어엎을 수 있을까?

정부는 쌀을 지키기 위해 국민 앞에 약속했던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참고 견뎌낼 수 있는 농민은 없다. 정부의 잘못된 통상정책으로, 그릇된 판단으로 만들어진 농업농촌을 망친 모든 책임의 당사자는 역대 정권이다. 추위와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발 얼어가며 흙내 묻은 땀을 흘려가며 이 땅의 먹거리를 생산했던 우리 농민은 제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해 왔다. 등에 빚을 지고, 눈물 쏟아 가며 한 해 키운 작물을 갈아엎으면서도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노동은 계속되고 있다.

봄에는 풍년기원제를 올리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 아래서 땀범벅 열기를 식히고, 가을에는 추수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마을 모두가 어우러지는 충만함과 희망을 품은 농촌을 기대한다. 만약 쌀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거짓이 된다면 위기의 농촌은 우리의 밥상까지 위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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