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먹거리에서 지속가능한 먹거리로

  • 입력 2014.12.27 17:58
  • 수정 2014.12.27 18:04
  • 기자명 허남혁 (재)지역재단 정책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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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남혁 (재)지역재단 정책기획위원

생협운동과 학교급식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먹거리운동은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먹고 자랐다고 해도 사실 과한 표현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중국산 먹거리 파동과 급식 식중독 사고, 2008년 광우병 사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을 겪으면서, 안전한 친환경 우리 먹거리를 대안으로 내세운 급식운동과 생협운동도 사회적으로 커다란 공감대를 얻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친환경농업이라는 토대가 있었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안전한 먹거리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쌓아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친환경농업이 정말로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들이 사회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농약은 과학이다’ 사건과 ‘농약급식’ 논란이 그랬고,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KBS 다큐도 있었다. 친환경농산물 대신 GAP를 대안으로 밀고 있는 교육부와 농식품부의 정책적 추세도 분명하다. 먹거리운동 진영에서는 친환경 무상급식에 대한 공격을 친환경농업을 죽이기 위한 공세로 규정하면서 강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그럼 우리 먹거리운동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전세계적인 대안먹거리운동의 추세를 통해 비교해 보자면, 우리나라의 먹거리운동은 지나치게 ‘안전한’ 먹거리라는 식품안전(food safety) 담론을 바탕으로 소비자들의 불안과 공포를 먹으며 성장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충분히 가져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안전’, ‘안심’ 먹거리라고 해서 객관적인 측면의 안전뿐만 아니라 사회적 신뢰에 바탕을 둔 안심도 동시에 강조해왔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먹거리라는 단어를 핵심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의 지속가능성과 건강성은 개인의 안전 차원 뿐만 아니라 사회적(공정성, 형평성) 차원과 환경적 차원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례는, 농식품부가 농산물의 단계별 위해요소의 차단을 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농산물우수관리인증(GAP)이 벤치마킹한 글로벌 GAP 인증에서는, 농약사용을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노동환경과 생물다양성 같은 사회적, 환경적 지속가능성 지표를 중요한 인증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즉, 원래의 모델과는 상당히 다른 엉뚱한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먹거리운동 진영에서 ‘안전한’ 먹거리가 되려면 농약이 검출되지 않는 친환경 농산물이어야 하고 불필요한 식품첨가물이 들어있지 않은 가공식품이어야 한다. 생협 진영에서 진행하는 식생활교육의 프레임도 주로 여기에 맞춰져 있다. 그러다보니 몇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하나는 이것이 네거티브 전략이라는 점이다. 먹어서는 안될 먹거리를 나열하게 된다는 뜻이다. 또하나는 끝장을 낼 수 없는 과학적 논쟁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검출기준이나 안전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 자체가 사회적인 결정이긴 하지만 과학적인 논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식품안전 담론은 필연적으로 미생물 차원에서 더 많은 위생을 요구하게 되고, 이는 오히려 대안먹거리와는 거리가 먼 대기업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최근 학교급식 공급 가공품 기준이 점차 해썹(HACCP)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 한가지 사례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시점에서 취해야 할 전략은 과연 무엇인가? 먹거리운동의 목표가 ‘안전한’ 먹거리에서 ‘지속가능한’ 먹거리로 옮겨져야 할 필요가 있다. 지속가능한 먹거리는 ‘안전’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둔다. 그리고 그러한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관계, 먹거리 노동에 있어서 공정한 노동관계, 자연과의 지속가능한 관계 등 여러가지 차원의 ‘관계’가 중요해진다. 친환경 인증마크가 환경적 지속가능성의 여러 차원들을 다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은 명확하고, 국내산 친환경농산물이라 해도 이주노동자의 노동착취가 깃든 먹거리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희망먹거리네트워크가 진행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먹거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기준 논의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제 우리의 먹거리운동도 좀 더 고차원의 공공성을 목표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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