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이다

  • 입력 2014.12.27 17:57
  • 기자명 한국농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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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을미년을 맞는다. 희망, 그것은 갑오년을 치열하게 살아냈기에 가능한 일이다. 땀흘려 농사짓는다는 것이 가장 옳은 일이며 더구나 지속성 있는 농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가장 정당한 우리의 몫이기에 치열할 수 있다.

강탈적 농업정책의 중심으로 들어가 농민이란 존재에 대해 인정할 것과, 식량주권의 정당함을 주창함은 갑오년을 살아온 농민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감자, 양파, 마늘, 고추 등 모든 농산물가격 하락도 농민들의 희망을 꺾어 버리지 못한다. 농민들에겐 늘 내년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근간은 언제나 농사뿐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를 중심으로 각국과의 FTA, 한-중 FTA와 앞으로 예상되는 TPP 등이 농민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힐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우리농업의 주력인 쌀마저 완전개방 된 상황은 우리에게 또 다른 세계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침몰한 세월호는 우리사회 곳곳에 숨어있다. 304명의 원혼이 세상을 거짓으로부터 건져내야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세상은 이제 그만 잊자고 다그치고 있다. 우리가 신주처럼 모셔온 ‘경쟁력’ 때문이란다. 지금까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 ‘경쟁력’이란 이념에서 우리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정부가 농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만든 경쟁력을 우리 스스로 짊어지지 말아야 한다. 경쟁력이란 화두를 끌어안는 순간 자본의 이윤만 살아남고 인간성은 비참의 세계로 떨어질 뿐이다.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자본의 탐욕이 집중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 주변에선 전가의 보도처럼 거리낌없이 사용되는 신자유주의 이념은 이제 그 역할이 끝나가고 있음에 주시해야 한다. 이미 우리는 신자유주의 자본의 잉여가치를 위한 도구에 불과함을 쌍용차를 비롯해 이 사회의 비정함에서 증명했다. 농민도 일회용 종이컵처럼 쓰고 버려지는 자본의 잉여인력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이런 깨우침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물론 새로운 대안은 이윤이 아닌 인간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자본의 욕망은 창망하다. 그 거친 파도를 막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것만이 우리의 최선이 될 뿐이다.

을미년은 우리에게 여러 과제들을 던지고 있다. 농산물 가격안정정책은 지속가능한 농업의 기본이다. 이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많은 걱정들에도 불구하고 이미 여러 지역에서 제정된 지방조례는 농민들의 의지와 정책적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농업이 생명의 근간이라고 한다면 국가와 사회가 보살펴야 한다. 지금까지의 정책은 그야말로 살농정책이었다. 우리사회는 농사짓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자식에게 농사를 물려주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이젠 달라지고 있다. 이윤만이 모든 것이란 생각에서 인간성 회복이라는 가치로 변화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간다면 농촌기본소득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 이것은 복지 정책이 아닌 생명근간을 지키는 비용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농사가 바르게 설 수 있는 것은 인간중심 이어야 가능하다.

을미년의 희망은 인간성 회복이다. 인간성 회복은 땀흘리는 농사로부터 시작된다. 지속가능한 생명에너지는 순환이 이뤄지는 농사로부터 시작된다. 밀알 속의 우주를 이해하는 농사만이 이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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