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한기 일이라꼬 만만치가 않을시더

  • 입력 2014.12.21 11:58
  • 수정 2014.12.21 12:01
  • 기자명 권순창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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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농촌 현장에 뛰어들어 체험한 내용을 수기로 올립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 낫으로 볏짚을 걷어올려 우사에 놓을 때까지 얼굴에 웃음기가 한가득이다. 본지 권순창 기자가 지난 14일 경북 영주시 이산면의 한 우사에서 소 먹이로 쓰일 볏짚을 나르고 있다.

고즈넉한 집 앞으로 차려진 우사에서 90마리 소가 볏짚을 우물거린다. 그 뒤로 옆으로 포도밭이며 고추밭이며 육묘 하우스며 이것저것 뭔가가 많이도 있다. 집 주변을 둘러보는 나에게 나른한 표정의 고양이 한 마리가 친한 척 몸을 부비며 반긴다. 내 고향에서도 멀지 않은 경북 영주 이산면 성승기(60), 정분남(59)씨 댁은, 소박하고 아늑한 모습이 꼭 고향을 닮았다.

아침부터 우사에 나가 있던 성승기씨가 기자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커피를 대접했다. ‘서울 촌놈’이라 농사일에 큰 도움도 못될 것인데, 사실 그가 우리를 반가워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다. 한우 이력조회 앱을 사용하고 싶다는 말에 동행한 사진기자와 머리를 맞대고 내려받아 드리자, 만족스러운 듯 연신 이력을 조회하며 새삼 농촌에 젊은 사람이 없다는 해묵은 이야기를 나눈다.

언제까지 따뜻한 데서 노닥거릴 수는 없다. 오늘의 첫 임무는 소 볏짚먹이 주기. 덜컥 낫을 쥐어주면서 “이거 들고, 볏짚 퍼다 올려주면 된데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서울 촌놈이 재깍 알아들을 리가 만무하다. 멍하니 서 있다가 성씨의 시범을 보고 ‘아하’ 하며 따라서 해본다.

일 년 넘게 축산 현장을 다녔지만 볏짚 사일리지를 뜯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다. 하물며 그걸 직접 뜯고 굴려 소에게 퍼 주는 일은 당연히 처음이다. 서투른 낫질에 바닥을 스릉스릉 긁을 때마다 움찔움찔 성씨의 눈치를 본다. 서투른 일꾼은 인심만 좋다. 넉넉히 올려준 볏짚을 멀찍이 있다가 슬몃 다가와 받아먹는 녀석들을 보자면 주제넘게도 아빠미소가 지어진다.

▲ 권 기자와 우사 주인 성승기씨가 함께 볏짚 사일리지를 굴리고 있다.

다음은 고추밭이다. 잉? 고추? 수확 끝났는데? 아하, 고춧대를 정리해야 하는구나. 농업전문지 기자가 이렇게 농촌을 모른다. 이미 뽑아져 있는 고춧대를 끈으로 묶어 한 편에 옮겨 정리한다. “이거야 일도 아이지. 이 일이 힘들다 카면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 없지 뭐.” 태연한 성씨의 말에 “근데 아버님, 전 지금 왜 힘들죠?”라는 나의 대답. “그래도 겨울에 왔으니 일이 편하지, 고추 딸 때 와 봐라. 종일 따도 끝도 없지.” 그도 그렇다. 어느 해 봄날 할머니의 고추밭에서 하루종일 고춧대를 박고서 다음날 팔을 들지도 못했던 기억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농한기에 온 걸 다행으로 여기며 농사일의 고됨을 다시 한 번 새긴다.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익자 입도 풀린다. 나보다 세 살 많은 딸이 서울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는 자랑에 “따님보다 나이 어린 사위 어떠세요?”, “기자 사위 어떠세요?” 열심히 추근대며 문을 두드려 본다. 아! 노동요가 이래서 필요한 모양이다. 신나게 떠드는 동안 어느새 정리할 고춧대가 동이 났다.

오전 작업이 끝나고 장모님, 아니 정분남씨가 정성껏 차린 점심을 먹는다. 그래도 산골이 고향이라고 산골 음식이 입에 맞는다. 뒤뚱거리며 들어온 정씨는 다리가 아프다고 푸념한다. “고추값이 너무 나빠 가, 꼭지 따고 판다고 쪼그려 앉았더니 이래 안 아픕니껴.” 농사 짓는 가짓수가 많으니 일도 끊이지 않는다. 농활 섭외 당시 언제 와도 일거리는 있다던 성씨의 말이 이해가 된다. “농촌에 할매들 인건비도 6만~7만원씩 하는데, 남자는 일단 삽자루 들었다 카면 기본이 10만원인거라. 내 몸 고생해서 돈 아낀다고 좀 해보면 골병나고, 농사 짓기가 이래 힘들어요.” 오전 잠깐 고생했다고 이젠 농사 힘들다는 얘기가 남 일 같지가 않다. 우리 농민들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오후엔 한약재인 ‘백지’를 다뤘다. 건조실에서 흙째로 3~4일 말린 백지의 흙을 털어 자루에 담는 작업. “먼지 온통 뒤집어 쓸낀데”라는 성씨의 걱정에 “걱정 마십시오” 단언했건만 이 흙먼지란 게 정말 만만치가 않다. 희뿌옇게 날리는 흙먼지에 처음엔 호흡을 참아봤지만 이내 체념하고 대놓고 들이마신다. 철판 위에 말려져 있는 백지를 ‘탕’ 하고 바닥에 털어내 굵은 뿌리를 털어담고 부스러진 잔뿌리까지 흙을 골라 모아담는다. 보기엔 얼마 안될 것 같은 양인데 담아도 담아도 끝이 없다. “두 내외가 붙어 가 이걸 할라 카면 종일 걸린데이.” 아무렴, 당연히 그럴 것 같다.

▲ 건조기에서 3~4일간 말린 한약재 '백지'를 광목천 위에 떨어뜨리자 먼지가 폴폴 일어났다.

얼마쯤 작업하다 보니 먼지는 이제 아무 일도 아니다. 계속해서 수그리고 일을 해야 하니 등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실실거리고 하던 농담도 더 이상 안나오는 걸 보면 오전 작업이 수월하긴 했던 모양이다. 시간이 늦어지니 정씨가 곁에서 “그만 하고 가시라”고 난리지만, 일은 바로 끝내고 생색은 제대로 내야 하겠기에 마지막 한 판까지 꾸역꾸역 작업을 마쳤다. 돌아오는 길에 코를 풀었는데 흙이 한 무더기 나왔다고 하면 도시 사람들은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노동이 고될수록 보람은 크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이날 하루 엄청난 노동이었고, 그래서 또한 엄청난 보람을 느꼈다. 농사일, 정말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돌아오는 길. 성씨가 한 보따리씩 싸 주는 단호박과 마를 거절하지 못하고 감사히 받아왔다. 사진을 찍으러 늘 기자들의 농활 현장에 동행해 기자들보다 더 열심히 농사일을 거드는 한승호 기자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며, 마지막으로 성승기씨께 현지어로 인사드린다. “하고매, 아재요. 농한기 일이라꼬 만만치가 않을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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