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내 소가 이유없이 죽는다면?

책임 소재 없어 … 외로운 진상규명

  • 입력 2014.12.21 11:55
  • 수정 2014.12.21 11:5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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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죽었다. 이유는 불분명. 사료가 의심되지만 확증은 없다. 사료를 제공한 축협도, 군청도 강 건너 불 구경이다. 스스로 나 자신을 구제해야 하지만 방법도 뾰족치 않다. 돕는 이도 없고 들어주는 이도 없다. 답답한 노릇이다.

경북 예천 박용제(59)씨의 축사에서 돌연 소가 죽은 것은 지난 10월 초. 언덕 위 우사에 A사 사료를 먹이고 언덕 아래 우사에 B사 사료를 먹이는 박씨는 10월 4일 B사 사료를 새로 들였다. 당일 오후부터 이 사료를 먹기 시작한 아래쪽 우사 소들은 설사와 비틀거림 등 이상증상을 보이더니 급기야 6일 3마리, 7일 4마리가 숨을 거뒀다.

다행히 전염병은 아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부검 결과는 다음과 같다. ‘조직소견 등을 검사하여 볼 때 비장과 간의 병변이 세균에 의한 감염으로 추정됨.’ 사료를 의심한 박씨는 사설연구기관과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 사료시료 분석을 요청해 각각 4만, 26만CFU(집락)/g의 세균 검출을 통보받았다. 정확한 세균의 종류는 판명 불가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료에서 1,000CFU/g 내외의 세균이 검출되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상을 의심할 수 있는 수치다.

▲ 박용제씨가 착잡한 모습으로 우사를 바라보고 있다.

사료를 공급한 군위축협 측은 박씨가 세균검사 결과를 들어 항의하자 박씨와 동시에 각각 시료를 채취해 재검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기껏 똑같이 채취한 시료가 각기 다른 기관에 의뢰됐다. 결과는 실용화재단에 의뢰한 박씨 측 시료가 5만6,000CFU/g, 한국사료협회 연구소에 의뢰한 축협 측 시료가 5,000CFU/g.

군위축협 관계자는 “사료협회 연구소도 공인연구기관으로 검사에 문제는 없다. 혹 세균이 많다 하더라도 유해균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다. 사료에 이상이 있다면 축협이 마땅히 책임져야겠지만 초기 검사에서 대장균이나 살모넬라균 등 유해균은 없었고, 이미 시간이 많이 경과되면서 사료 내 세균증식이 진행돼 사실 재검사도 의미는 없다. 더욱이 같은 사료를 쓰는 다른 농가는 아무 일도 없지 않나”고 말했다.

이에 박씨는 “같은 사료라도 공장에서 배합탱크에 한 번에 들어가는 양은 한계가 있다. 내가 한번에 8톤을 샀으니 그 사료만 이상이 있을 수도 있다. 축협이 계속 무관심하면서 피해자에게 알아서 하라고 나온다면 법적 대응도 고려하겠다”고 분개했다.

통상 농가와 사료업체 사이에서 사료의 안전성 문제가 불거질 경우 업체가 견실한 법률 자문체계를 갖추고 있는데다 농가 스스로 문제입증이 어렵기 때문에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못한 채 농가가 피해를 감당하는 경우가 많다. 박씨 또한 폐사 초기 페니실린계통 주사비와 휴약기 출하지연, 이후 검사수수료 등을 포함해 총 4,000만원 가량의 손실을 떠안으며 진상규명을 위해 고군분투중이다.

문제는 진상규명 자체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할 지자체인 예천군청에서도 “이 부분은 민사 영역이라 군청이 관여할 수 없다”며 적극적인 중재 의지가 없는 분위기다. 정말로 사료에 이상이 있다면 박씨로서는 무척 억울한 상황이며, 사료에 이상이 없다면 명쾌한 근거와 별도의 사인이 박씨에게 제공돼야 할 일이다.

만약 제도적으로 책임을 가진 중재기관이 있었더라면, 폐사 초기 신속치 못했던 대응도, 양측의 시료가 각기 다른 기관에 의뢰된 아쉬움도, 확실한 매듭 없이 부유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가진 것 없고 힘 없는 농민들은 소가 다 죽어나가도 그저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는건가”라는 박씨의 외침이 씁쓸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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