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협, 실속없는 합병보다 내부개혁 우선

한국농정이 뽑은 뉴스, 그 후 ㅣ 지역농축협 합병·농협 수입농산물 취급

  • 입력 2014.11.30 00:03
  • 수정 2014.11.30 20:09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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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농정이 뽑은 뉴스, 그 후 ㅣ 지역농축협 합병·농협 수입농산물 취급

1989년 1,464개에 이르던 지역농협은 지난해 기준 968개까지 감소했다. 지역농·축협 합병 바람을 타고 매년 약 10여개의 조합이 합병에 착수하고 지난달 현재 24개 조합이 합병의결을 완료한 뒤 합병절차를 밟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합병 바람에 힘을 불어넣으며 전도사 역할을 자처해 왔다. 2011년 50억원 정도였던 무이자자금 지원규모를 올해 최대 150억원까지 3배나 끌어올렸다. 올해 농촌지역 농협은 합병 바람에 내년 첫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가 겹쳐 홍역을 앓다시피 했다.

그 중 충북 옥천지역은 옥천-군서농협 합병, 대청-청산농협 합병, 옥천영동-보은축협 합병작업이 동시에 진행돼 전국 상황의 축소판처럼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편의상 좋은 합병, 나쁜 합병, 이상한 합병으로 구분해 독자들에게 설명하고자 한다.

#이슈 1
옥천지역 중심으로 살펴 본 좋은 합병·나쁜 합병·이상한 합병

좋은 합병, 옥천-군서농협

지역여론은 옥천농협 조합장이 임기연장을 하려고 조합원 800여명 수준의 작은 농협인 군서농협을 받는 게 아니냐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희순 옥천농협 조합장은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 일정에 맞춰 임기가 2년 가까이 늘어난 혜택을 맛본 바 있다. 이에 이 조합장은 농협법에 따라 합병 뒤 보장되는 2년 임기의 조합장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옥천농협은 적극적인 합병 홍보에 나섰다. 농협중앙회에 자율합병 권고를 받은 지역농협과 합치면 수익이 줄지 않을까 우려하는 조합원들에게 “사업권역을 넓혀야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옥천농협은 그 결과 지난 8월 조합원 총투표에서 61.5%의 찬성을 얻어 합병안이 가결됐다. 다음달 열린 군서농협 조합원 투표에선 96.4%가 합병에 찬성했다.

옥천농협 관계자는 “군서농협 관내엔 휴양림이 있어 마트사업 등 신사업을 추진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며 “옥천농협엔 면세유를 배달하는 취급소가 없는데 군서농협엔 취급소가 있다. 서로에게 이득이 돌아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나쁜 합병, 대청-청산농협

▲ 농촌 지역에 농협 합병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은 실속없는 합병보다 내부개혁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달 25일 충북 옥천군의 한 지방도로에 농협합병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승호 기자

두 조합 모두 합병 전력이 있다. 대청농협은 2011년 총 70억원의 무이자 자금 지원을 받아 안내농협과 안남농협이 합병해 탄생했다. 그런데 3년 만에 다시 합병판에 나타났다.

합병추진 과정을 지켜보던 청산농협 조합원들은 소통없는 합병과정을 비판하며 합병 반대 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대청과 청산은 각자 지역실정이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박관석 옥천군농민회 청성면 지회장은 “청산농협 지역은 쌀, 고추, 인삼이 주작목이지만 대청농협 지역은 밭작물이 주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박 지회장은 “몇 년 째 출자배당금도 못 받고 있는데 청산농협은 이제 수익이 나려는 시점”이라며 “내부개혁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김재철 청산농협 합병반대 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자구책으론 살 가능성이 있지만 합병하면 회생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150억원 남짓한 무이자 자금 지원으론 이자 수익 몇 억 밖에 남지 않는데 이 정도 이득으론 두 농협의 부실을 막기 어렵단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합병이 성사되면 양쪽 조합장이 추천한 대의원들이 설립위원회를 만들어 신임 조합장을 선출한다. 부실을 초래한 당사자들이 2년짜리 조합장을 할 수 있는 탄탄대로가 놓여지는 셈”이라며 “우리 손으로 회생 노력에 확실히 나설 사람을 뽑고자 합병을 반대했다”고 덧붙였다.

박선옥 청산농협 이사는 “조합원 의견 수렴이 너무 부족했다”며 “대의원총회에서도 여론 수렴이 없었고 합병계획을 설명하는 마을설명회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박 이사는 “경영책임자의 부실운영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인구도 줄고 합병이 전국적인 추세라는데 그건 핑계”라고 합병 찬성 논리를 일축했다. 결국 지난달 치러진 청산농협 조합원 투표결과 총 투표자 1,585명 중 1,044명이 반대해 두 조합의 합병은 무산됐다.

이상한 합병, 옥천영동-보은축협

두 조합의 합병은 2012년 옥천영동축협이 47억원의 대금을 회수하지 못해 농협중앙회로부터 합병 권고를 받아 시작됐다. 옥천영동축협은 청주축협과 합병을 논의했지만 거절당하고 보은축협과 합병에 나선다. 하지만 지난 4월 보은축협 이사회에서 합병불가 방침이 결정돼 이마저도 힘들게 됐다.

반전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일으켰다. 농식품부는 지난 6월 보은축협에 옥천영동축협을 흡수하란 합병권고를 내렸다. 허구영 보은축협 상무는 “합병을 안할 수가 없었다. 조합원 수도 감소해 합병에 나서야 했다”고 말했다. 보은축협은 최근 무자격 조합원을 대대적으로 정리해 1,500여명에 달하던 조합원 수가 800여명으로 감소했다. 축협 설립인가기준인 조합원 1,000명에 미달될 정도로 700여명이나 조합원을 정리했다.

이어 지난 9월 두 조합 모두 조합원 투표 결과 찬성이 과반수 이상 득표에 성공해 합병이 최종 결정됐다. 인수조합인 보은축협 조합장 임기는 합병일로부터 2년 연장된다.

조합원 수는 옥천영동축협이 약 1,800여명으로 보은축협보다 1,000여명 남짓 많다. 그런데 합병시 임원 및 대의원 정원 수는 보은축협이 많게 책정됐다. 임원 비율은 7(보은):2(옥천):2(영동), 대의원 수는 보은 29명, 옥천 17명, 영동 9명으로 배정됐다.

보은축협 내부사정도 복잡하다. 보은한우협회(회장 맹주일)는 10월 구희선 보은축협 조합장을 횡령혐의로 검찰에 진정을 제출했다. 3개군축협이 합쳐져 겉모습은 총자산 2,000억원을 자랑하는 거대 축협으로 탈바꿈했으나 안정을 되찾기엔 아직 과제가 많이 남은 모습이다.

“광역합병, 조합 커지면 구조적 문제도 커져”

<인터뷰> 임영선 농협경제지주 경영지원1팀장

최근 쓴 <협동조합의 이론과 현실>에서 농협 광역합병의 문제점을 짚었다. 그 이유는.

지역농협 합병을 도식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규모의 경제란 효과를 낼

   
 
사업의 동질성이 필요하다. 지역농협들 사이에 조합원 성격이 이질적이고 사업도 이질적이란 특성을 이해 못한 거다.

면단위 지역농협에서도 조합원들의 이해가 부딪힌다. 쌀농가는 RPC사업을, 과수농가는 APC사업을 강조한다. 노령 조합원은 복지확대를 젊은 조합원은 농산물 생산과 관련한 지도사업을 원한다. 때문에 조합이 커지면 구조적 문제도 커진다.

농촌지역 농협 경영이 어려워지며 합병이 어쩔 수 없는 대세란 인식이 형성돼 있다. 어떻게 보는가.

모든 합병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조합원들의 합병 요구가 있으면 하는거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몰아가기식 합병이고 정부주도 합병의 성격이 짙다. 지역농협의 부실운영 때문에 추진하는 농협 합병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농협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도 논의하면 좋겠다.

농협이 협동조합으로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데 정체성의 의미는 제각각이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은 이용자 소유한 회사다. 협동조합은 이용자가 소유하고 통제하는 회사인데 보통의 인식은 복지기관으로 바라본다. 협동조합은 수익이 나면 같이 배분하고 손해가 나면 같이 보태야 한다.

농협의 공과에 대한 평가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복지재단 역할을 요구하면서 판매사업은 협동조합답지 않다고 한다. 미래조합원 행복을 현재 조합원이 갉아먹을 수도 있다. 지속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이슈 2
농협 하나로마트 수입농산물 판매 여전

“문제제기해도 빠졌다가 다시 채운다”

농협 하나로마트의 수입농산물 판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수입과일 판매는 점차 품목이 다양해지며 국산 과일 판매를 위협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의장 장명진)은 지난 6월 농협 하나로마트 수입농산물 판매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전농 충남도연맹은 성명을 통해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바나나, 체리, 파인애플, 포도, 키위, 망고 등의 수입과일을 판매하고 중국산 도토리묵가루, 심지어 고사리 등의 나물까지 중국산이 진열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입농산물·가공식품 즉각 매장 철수 ▲수입농산물 유통·판매 거래량 공개 ▲충남도청 지하마트 수입농산물 판매 금지를 주문했다.

권혁주 전농 충남도연맹 사무처장은 “문제제기를 해도 잠시 빠졌다가 다시 채운다며 안타까워했다. 권 사무처장은 수입농산물 판매를 막고자 농협 충남지역본부와 면담도 진행했다. 하지만 지도를 해도 지역농협이 잘 듣지 않는다며 핑계를 댄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에 지역조합을 지도 및 감독할 책임이 있는데도 형식적 수준의 관리에 그친다는 설명이다.

본지 취재결과 충청지역 농협 하나로마트들의 수입농산물 판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충남 당진농협 하나로마트는 바나나. 키위, 레몬, 그리고 미국산 석류를 판매하고 있었다. 당진농협은 계성점 하나로마트에서도 바나나와 키위를 진열했다. 천안농협 파머스마켓에선 수입산 새싹채소와 중국산 도토리묵이 판매 중이었다.

충북지역에선 진천군 이월농협 하나로마트(레몬, 키위), 옥천군 옥천농협 하나로마트(바나나, 레몬, 키위)가 수입과일을 판매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농협 하나로마트의 수입쌀 막걸리 판매도 여전했다. 농협은 ‘쌀 원산지 100% 국내산’이란 자체 막걸리 취급기준을 만들어 수입쌀 막걸리 취급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당진농협, 천안농협, 이월농협은 수입쌀이 원재료인 막걸리를 버젓히 판매했다.

천안농협 파머스마켓은 지난 7월 본지 취재에서도 수입쌀 막걸리 판매가 확인된 바 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수입쌀 막걸리 한 제품은 제품명에 천안이란 지역명을 표기해 소비자들에게 혼동을 줄 가능성도 있다. 수입쌀과 국내산쌀을 섞은 뒤 쌀 주산지 지역명을 내세웠던 막걸리판 ‘이천농산’인 셈이다.

한편, 농협 충남지역본부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하나로마트를 돌며 수입농산물을 취급 못하도록 지도하고 있다”며 “최근 김장철이라 농협 식품안전연구원에서 식품안전 컨설팅을 다니는데 함께 수입농산물 취급 금지를 지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하나로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찾는다는 이유로 수입농산물을 판매하는데 현지방문이나 문서지침 전달을 통해 지속적으로 지도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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