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시장 전면개방에 한-중 FTA까지, 어디까지 밀어붙이나

한국농정이 뽑은 뉴스, 그 후 ㅣ 쌀전면개방·한-중 FTA·기초농산물 소득보장제

  • 입력 2014.11.28 12:36
  • 수정 2014.11.30 18:17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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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이 뽑은 뉴스, 그 후 쌀전면개방·한-중 FTA·기초농산물 소득보장제

2014년은 농업계 흑역사로 록될 것이 분명하다. 주식인 쌀 시장을 전면개방하겠다는 선언에 이어 농민들이 ‘사형선고’라고 극렬히 반대했던 한-중 FTA 마저 체결된 까닭이다.

벼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작목 전환을 할 것이고, 이는 곧 농산물 전반의 가격폭락을 동반한다. 관세를 물어도 값이 싼 중국산 농산물은 한-중 FTA라는 특혜로, 결국 국내 농산물을 퇴출시키지 않을까.

다시 식량안보를 새겨야 할 때다. 농민들이 기초농산물의 소득보장을 외치는 데는, 다같이 살자는 처절함에서 비롯된다.

#이슈 1
‘기습’으로 일관한 쌀시장 개방 선언

관세만 물면 누구나 쌀 수입 … 내년 1월 1일부터 전면개방

“20년 미뤘으면 할 만큼 했다.”
정부가 내년 쌀시장 개방을 ‘기습’ 선언을 하던 날,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농민들은 삭발을 했다.

지난 7월 18일 오전,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대외관계장관 회의 직후 정부 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쌀전면개방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날 이 장관은 관세율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지 않았다. 또 향후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협상에서 쌀을 양허(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선언적 내용만 담았다.

▲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7월 18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쌀 전면개방을 공식 발표하고 있다. 같은 시각 정부 서울청사 밖에서 농민들은 삭발을 했다.한승호 기자

이후 지난 9월 18일 쌀관세율 513%를 전격 발표했다. 쌀 전면개방 선언부터 관세율 발표까지 2개월. 정부는 ‘기습’과 ‘일방’을 쌀전면개방을 준비하는 자세로 고정시켰다.

순차적으로 정부는 9월 30일 WTO에 쌀수정양허표를 제출했다. 양허표에는 내년 1월 1일부터 513%의 관세를 붙여 쌀을 수입하겠다는 내용과 현재 의무수입물량(MMA) 40만9천톤은 항구적으로 수입하되 이 중 30%의 밥쌀용 의무를 삭제하고 국내시장 접근을 보장 하는 등의 용도규정을 일체 없애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현재 WTO 회원국들은 이런 내용을 모두 수용할 것인지, 아닌지 검토 중이다. 이로써 1995년~2004년까지 10년간의 쌀시장 개방 1차 유예에 이어 2005년~2014년 2차 유예까지 두 번의 시장개방 연장에 마침표가 찍혔다. 내년 1월 1일부터는 관세만 물면 누구나 쌀을 수입할 수 있게 된다.

쌀개방 선언 이후, 쌀값은 폭락하고

쌀시장 개방에 있어 초미의 관심사는 관세율이었다. 당초 예상했던 300~400%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정부는 쌀관세율 513%를 쌀개방 선언 2개월 후에 ‘기습’ 발표했다. 국민을 대신한 국회조차도 정확한 관세율 수치는커녕 발표를 언제할건지 조차 깜깜하리만치, 그야말로 ‘기습’의 결정판을 선보였다.

쌀 전면개방을 처리하는 정부의 태도에 불신이 쌓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대국민적 논의 과정도 없고, 처리 절차도 일방적이라는 데 있다. 또 가장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농민들조차 대상화 시켰다는 점이다. 정부는 쌀관세화 설명회를 농번기에 잡는 해프닝도 벌였다.

쌀개방 선언 이후 당장 올해 쌀값이 하락했다. 이미 지난 2005년 밥쌀용 쌀 수입을 앞두고 쌀값 폭락을 경험했던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화를 키운 것이다. 설상가상 공공비축미 선지급금을 지난해보다 3,000원 낮춰 발표하다보니, 그렇잖아도 불안한 시장의 심리 속에 쌀값은 뚝뚝 떨어졌다. 정부는 뒤늦게 초과수요량 18만톤을 시장격리한다고 발표했으나, 이마저도 시장을 움직이지 못했다.

513% 관세율·밥쌀용 의무 삭제 ‘관건’

WTO에 쌀 수정양허표를 제출한 가운데, 우리 정부는 513% 관세화 관철과 밥쌀용 의무를 삭제하는 등 나름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모두를 얻기는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우선 우리가 513%를 설정할 때, 국제쌀값으로 중국의 가격을 설정한 것도 논란이 된다. 또 하나는 밥쌀용 의무 수입과 국별쿼터를 없애겠다는 우리 정부의 수정안을 지금까지 수출권을 보장받던 미국과 중국측이 순순히 받아들이겠냐는 점이다.

정부 내에서도 ‘관세율’과 ‘용도지정 삭제’,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어렵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래서일까.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버젓이 ‘밥쌀용 수입’ 예산을 세웠다가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밥쌀용 수입대’라는 민감한 단어 대신, ‘수입양곡대’로 가공용쌀 예산과 뭉뚱그려 국회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기획재정부(기재부)는 쌀시장 개방에 본격대비하기 위한 법안 개정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10일 기재부는 ‘관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쌀 등 미곡류 16개와 가공곡물 11개에 대해 특별긴급관세(SSG, 스페셜세이프가드)를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멥쌀, 찹쌀 등 미곡류 16개 품목의 경우 수입물량이 47만1,966톤을 넘어서면 684%로 관세가 늘어나고, 가격기준으로 kg당 145원의 90%에 미달할 경우 관세법에 따라 SSG가 적용된다.

#이슈 2
한-중 FTA 타결, 국내 장악력 더 강해진 중국농산물

세번 기준 64% 관세 없어져 … “최악 면했을 뿐”

13차 협상까지 타결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평행선을 달리던 한-중 FTA가 지난달 10일 14차 협상으로 타결됐다. 정부는 유럽연합(EU)과 미국에 이어 중국까지 세계 3대 경제강국과 잇따라 맺은 FTA로 경제영토가 확장됐다며 홍보에 역점을 뒀다.

한-중 FTA는 2012년 1월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시작됐으며, 그 해 5월 2일 한·중 통상장관 회담에서 정식으로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이어 2013년 9월 협상의 큰 틀인 ‘모델리티’가 합의된 이후 구체적인 상품협상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협상의 차수만 늘려가고 있던 차다.

협상 타결 직전인 13차 협상까지만 해도, 정치권에서 흘러나온 한-중 FTA 11월 타결설을 ‘설’로 일축할 만큼 입장차가 컸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양국정상회담은 협상을 급진전시켰고, 한-중 FTA는 정치적 상징성만 충족시킨 채 졸속 타결되고 말았다.

한-중 FTA에 대한 농업계 반응은 “최악은 면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장 큰 이슈였던 중국의 수입위생검역(SPS) 문제에서 현행 국가단위를 지역단위로 바꾸자는 이른바 ‘지역화’ 요구도 WTO 협정 원칙에 따른다는 기본 입장을 지켰기 때문이다.

또 주요 신선농산물인 고추·마늘·양파·생강 등의 양념채소와 배추·당근·무·오이·가지 등 주요 밭작물, 사과·배·감귤 등 주요 과수 등은 양허제외 됐다. 축산물 또한 번식용 한우·돼지 등은 관세가 즉시 없어지지만 고기용은 양허제외 됐다.

이같은 이유로 농림축산식품부는 한-중 FTA를 일컬어 ‘낮은 수준의 FTA’이며 국내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시보는 한-중 FTA 농산품 양허안

전체 농산물은 세번(관세율표상 분류된 상품 번호. 6단위까지는 국제적으로 공통으로 사용되며 그 미만은 나라마다 다름) 기준으로 1,611개다. 이번 한-중 FTA 체결로 1,611개 농산품 중 216개(13.4%)는 즉시 관세 없이 수입이 가능하고, 209개는 5년 내 관세철폐, 164개는 10년 내 관세가 사라진다. 20년까지 관세가 철폐되는 농산품은 1,030개(64%)에 이른다.

초민감품목으로 분류된 581개 농산품 중에서도 548개는 양허제외, 저율할당관세(TRQ : 정부가 허용한 일정 물량에 대해서만 저율관세 적용, 이를 초과한 물량은 높은 관세 적용), 부분감축 등으로 합의됐다.

김치·혼합조미료 관세 인하 … TRQ물량도 관세 급감

한-중 FTA로 우선 중국산 김치의 관세가 20%에서 19.8%로 부분감축 되고, 혼합 조미료·기타 소스(일명 다대기)도 45%에서 40.5%로 낮아진다.

김장철을 맞아 배추 한 포기에 500원에 거래되는 실정에서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중국산 김치의 관세가 인하됐다는 사실은, 배추·무 등의 채소값 폭락 뿐 아니라 양념채소류의 상시적 가격하락을 예고하고 있다.

13차 협상까지만 해도 중국은 농산물, 특히 밭작물의 대대적인 개방을 촉구했다는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 있었다. 그러던 중국이 14차 협상에서 주요 농산물의 대부분을 양허제외했다는 것은, FTA 외에도 시장진입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는 설명도 가능한 부분이다.

특히 이번 초민감품목 중 TRQ만 해도 대두 1,000톤, 참깨 2만4,000톤, 고구마전분 5,000톤, 팥 3,000톤, 기타사료 3만8,000톤, 맥아 5,000톤 등이 해당된다.

TRQ 물량은 품목마다 차이는 있지만 3~50%의 낮은 관세로 수입된다. 예를들어 대두(콩나물용, 기타)는 487%의 관세가 붙는데, TRQ 물량은 5%만 부과된다. 이어 ▲참깨 630%→40% ▲고구마전분 241.2%→ 11% ▲팥(건조, 기타) 420.8%→30% ▲기타사료(식물성 부산물) 46.4%→5% ▲맥아 269%→30% 등 정부가 정한 물량 범위 내에서 관세가 대폭 낮아진다.

수백퍼센트 관세 붙어도 값싼 중국산 농산물

중국은 농업 최대 생산국이다. 중국과 우리나라 농업환경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욱 확연하다. 농가 인구 비중은 중국 59.6%, 우리나라는 5.8%에 불과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나온 ‘농림축산식품 주요통계’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중국이 우리나라에 비해 식량작물재배 면적은 105배, 채소는 87배, 과수는 77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가격경쟁력은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한-중 FTA가 아니더라도 중국산 농산물은 이미 차고 넘친다. 수백퍼센트의 관세가 붙어도 중국산 농산물은 국내에서 싼값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고추와 고춧가루에 270%의 관세가 붙어도, 국내산 도매가격보다 80.5% 수준에 불과하다. 국내 수입고춧가루의 95%가 중국산인 이유다.

마늘은 전량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는데, 360%의 고율관세를 피하기 위해 27%의 냉동마늘로 들여오는 비중이 50%를 넘는다. 생강은 98%, 양파는 91.7%, 당근은 99%가 중국산이다.

2013년 기준 전체 수입농산물 수입액 중 100% 중국산인 농산물은 메밀, 율무, 고비, 마늘, 무, 배추, 더덕, 들깨, 은행 등이고 90% 이상은 고구마, 수수, 조, 팥, 고추, 당근, 브로콜리, 생강, 시금치, 양배추, 양파, 파, 고사리, 도라지, 밤, 버섯, 잣, 칡뿌리 등이다.

이미 중국 농산물이 활개를 치고 있는 우리 농산물 시장에 한-중 FTA의 영향이 미미하다고 과연 누가 말하는가.

 

▲ 지난 6월 2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쌀 전면개방 저지!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범국민대회’에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농민 및 대회 참석자들이 우리 쌀을 지키자는 의지를 담아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이슈 3
기초농산물 소득 보장 움직임, 전국이 들썩

농산물값 폭락, 자구책 마련

채소가격이 2년 연속 폭락하고 있는 가운데, 기초농산물의 가격보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여론이 전국을 들썩이고 있다.

지난 달 21일 전라북도의회는 ‘기초농산물 국가수매 실시 촉구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해 청와대와 중앙부처에 발송했다. 전북도는 “FTA로 특정 산업은 혜택을 누리는 반면 농·축·수산업은 피해가 심각해 식량안보차원에서 농업을 유지해야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면서 ‘기초농산물 국가수매’를 촉구했다.

전남지역은 주요농산물의 최저가격 보장 지원조례 제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농 광주전남연맹, 전여농 광주전남연합 등이 주축이 된 ‘전라남도 주요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을 위한 지원조례 제정 전남추진본부’는 지난 9월 3일 전남도청 앞에서 ‘주요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을 위한 지원조례’ 청구인명부 접수 기자회견을 열고, 조례제정 수순에 돌입했다.

국회 또한 기초농산물의 가격보장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지난 5월 새정치민주연합 황주홍 의원(전남 장흥 강진 영암)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국민 식생활에 필요한 기초농산물에 대해 농민이 포함된 ‘기초농산물국가수매위원회’를 통해 상하한가를 정하며, 그 범위 내에서 생산자 소비자 보호를 위해 국가가 적정량을 수매하는 ‘국가수매제’를 신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통합진보당 김선동 전 의원이 발의한 ‘국민기초식량보장법’의 맥이 이어지게 됐으며,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도입 필요성이 다시한번 입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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