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 시래기 아니라도 좋은 겨울 시래기

  • 입력 2014.11.23 00:45
  • 수정 2014.11.23 00:46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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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거리를 지나면서 김장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식당 앞에 산처럼 쌓인 배추들도 보게 되고 식구 적은 집의 몇 포기 안 되는 적은 양의 배추들도 보게 된다. 그 배추들 옆엔 머리 잘린 무들도 함께 있다. 무청 없이 몸통뿐인 무가 배추의 속이 되고 동치미가 되고 깍두기가 되기 위해 배추 옆에 자리 잡고 있다.

무청을 말린 시래기가 없는 사람들의 배를 채우는 음식의 재료로 취급받아 김장쓰레기 취급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면서 도시인들의 편의를 위해 언젠가부터 김장무는 무청 없이 달랑 몸체만 팔고 사기 시작했다. 최근 먹고 살만해진 현대인들에게 시래기가 건강한 식재료로 알려지면서 무청 달린 김장무가 유통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대형마트에 무청 달린 무가 나오는 걸 보면.

▲ 시래기밥
손바닥만 한 우리 집 마당엔 김장배추와 무를 심을 공간은 없다. 그래도 해마다 김장무와 배추는 재미로 아주 조금씩 심는 흉내를 내곤 한다. 하지만 김장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므로 근처에 귀농해 살고 있는 이웃농부들로부터 상당량을 사서 김장을 해왔다. 몇 해 전엔 김장무와 배추를 구입하여 배달 받은 후 식구 모두 몹시 낙담하였던 기억이 있다. 나를 향한 배려로 그 이웃농부가 무청을 모두 잘라버리고 몸통만 남은 무를 가져온 것이었다. 그런 농부를 탓할 수도 없고 무청 때문에 어디 가서 무를 다시 사올 수도 없는 상황이라 정말로 난감했던 해였다. 우리 집은 많은 김장을 하기 때문에 무도 만만치 않은 양을 사게 되므로 무청을 말리면 꽤 넉넉한 시래기가 나온다. 그 시래기는 겨우내 우리 가족의 국으로 나물로 찜으로 밥상 위에 올라온다. 나는 시래기음식 중의 최고를 시래기밥으로 꼽는다.

겨울 어느 하루 입맛이 없고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땐 말려둔 시래기 몇 올을 꺼낸다. 푹 불려 데쳤다가 껍질을 벗기고 송송 썰어 들기름과 집에서 담근 간장을 조금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평소보다 조금 적은 밥물을 잡고 무쳐놓은 시래기를 쌀 위에 넉넉히 얹는다. 밥이 되는 동안 비벼 먹을 양념장을 준비하면 별다른 반찬이 필요 없는 훌륭한 한 끼가 된다.

칼슘과 철분이 많아 골다공증이나 빈혈에 도움이 되며 섬유질이 풍부해 변비에도 좋다느니 하면서 시래기가 건강식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서울의 거리엔 시래기밥만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생기고 급기야는 양구처럼 시래기를 특산물로 대량생산하는 지역도 생겨났다. 시래기를 만들기에 적합한 무를 재배하기도 한다니 잉여농산물이 훌륭한 식재료로 다시 태어나는 시래기가 아니라서 마음 불편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양구시래기 아니라도 무가 자라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서나 만들 수 있는 시래기는 겨울을 건강하고 맛있게 날 수 있는 최고의 식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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