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와 양아치

  • 입력 2014.11.23 00:44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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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기관이라고 한다. 국회를. 국회의원 하나하나가 별개의 헌법기관이다. 그 헌법기관들이 예결위에서 “XX깡패야” “양아치 같은” 하며 막말설전을 벌였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 상황을 바라보는 국민들로서는 참담할 뿐이다. 냉철하고 비상한 판단과 결정으로 예산을 다뤄야 하는 곳에서 감정이 쌓인 설전이 오고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공공의 복리를 확대하고 정의를 세워야 하는 국회의원이 사리사욕이나 패권 싸움으로 얼룩진다면 국회나 국회의원 이름도 바꿔 불러야 한다.

깡패라는 말은 서양말 갱(gang, 폭력단)이 패거리와 합쳐진 말로 본다. 깡패는 돈을 노리고 폭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폭력이 정치에서 행사되면 정치깡패라고 구분지어 부른다. 우리 헌정사에서 정치깡패는 자주 나타났다. 결국은 이들도 돈 때문에 폭력을 행사한걸 보면 그냥 깡패일 뿐이다. 폭력으로 패거리를 만들고 그 힘으로 권력을 확장하면 돈은 따라오는 것이기에 그렇다. 폭력을 직접 행사하는 당사자도 돈 때문일 테니 말이다.

양아치는 동냥아치가 줄은 말이다. 양아치는 동냥을 주로 한다는 말이다. 동냥은 끼니를 때우기 위해 구걸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동냥은 사당패 같은 예인 집단이 했다. 이후 넝마나 고물을 줍는 사람들도 동냥을 했다. 동냥을 하다보면 어떤 때는 협박과 폭력도 불사한다. 먹기 위해서다. 먹어야 살기 때문에 눈앞에 먹이를 두고 그냥 돌아서는 법은 없다. 그것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깡패와 양아치는 다르다.

깡패는 이 나라의 현재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선 국민들의 밥통을 차버리는 폭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이 깡패가 아닌가. 아이들에게 주던 밥통도 차버리는 폭력에서부터 농민들의 밥상을 걷어차는 폭력은 폭력 중 으뜸이다. 이런 집단이 깡패집단이 아니고 뭣인가.

며칠 전 새누리당 당정협의회 오찬장에 들어가 계란을 던지고 고춧가루를 뿌리며 분노에 찬 목소리를 전달했던 일단의 농민들이 양아치 대접을 받았다. 그렇다, 적어도 돈을 위해 주먹을 휘두르는 권력자 앞에 일단의 농민들이 양아치로 보인건 그나마 다행이다. 양아치는 적어도 자신의 생존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을 피하려고 할 뿐이다. 더도 덜도 말고 배부르고 등 따숩게 살 수 있다면 그만이다. 농민들이 벼랑 끝으로 몰려있는 상황에서 저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죽음이 달려드는데 달걀이 아니라 폭탄을 던져도 아쉬운 일일 뿐이다.

농민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은 속을 들여다보면 농사짓지 말라는 경고가 듬뿍 묻어나올 뿐이다. 이제 농민들은 오갈데 없는 양아치가 돼 버렸다. 자본과 권력을 주먹질로 판가름 내는 깡패들 사이에서 하릴없는 양아치가 된 것이다. 생존의 벼랑에선 양아치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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