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42회
제2장 흙바람 42회
  • 최용탁 소설가
  • 승인 2014.11.16 1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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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몰랐지만 군대를 가던 그 순간이 바로 선택의 인생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는 중대한 고비였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전방 부대로 배치되는 동안에 선택은 그저 삼년을 무사히 넘기고 나오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배고픔에 못 이겨 우연히 구한 밀가루 빵 한 덩이를 논산훈련소의 더럽기 짝이 없는 변소에서 우겨넣듯이 삼키며 남은 세월이 암담하였지만, 누구나 견디는 군대를 참지 못한다면 무슨 큰일을 할 것인가 하는 속다짐을 두고 또 두었다. 군대를 마치면 당연히 다시 수원으로 돌아가 재열을 비롯한 동지들과 농민운동을 할 생각이었다. 한창 벌어지고 있는 이상촌 건설운동도 그 때쯤이면 자리가 잡힐 터였다. 누구에게나 족쇄처럼 채워지는 삼년간의 군대만 끝내면 세상에 무서울 것 없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세상의 무서움에 비하면 군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대 배치를 받고 얼마간 안정이 된 다음에 선택은 집과 재열에게 편지를 보냈고 이내 답장이 왔다.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따로 써서 한 봉투에 보내온 편지보다 재열에게 온 편지가 더 반가웠다. 아무 문제없이 이상촌 개척이 잘 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렇게 답장에 답장이 꼬리를 물고 소식을 전하는 게 군대 생활에서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편지가 끊겼다. 일이 바빠서 그럴 거라 짐작하고 넘어갔는데 두 달 세 달이 지나고 몇 번의 편지에도 답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선택은 재열의 친구인 임상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돌아온 임상호의 답장이 이상했다. 선택이 궁금해 하는 일은 나중에 알게 될 것이고 혹 휴가를 나오면 제가 다니는 서울대 문리대로 찾아오라는 간략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편지에는 그토록 궁금해 하던 재열이나 이상촌 운동에 대해서 한 마디도 없었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이 역력했다. 하지만 휴가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던 휴가를 받고 선택은 먼저 서울로 향했다. 물어물어 임상호가 다니는 학과를 찾아간 선택은 망연자실한 소식을 들었다. 늘 여유가 넘치던 임상호가 처음 보는 굳은 표정으로 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우선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선택 형도 지금 위험에 처했다는 겁니다. 저까지 조사를 받은 판이니까 당연하지요. 다만 형은 아직 애민청년회원인 것을 당국에서 몰라요. 재열이가 명단이 들어있던 종이들을 다 불태웠기 때문에 군대에 간 형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언제 누구 입에서 나올지 모르니까, 미리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할 겁니다.”

애민청년회가 반국가단체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려움에 가슴이 미친듯이 방망이질을 했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되었단 말이오? 임형도 알다시피 우리 활동은 관에서도 지원해 줄 정도였고 관리들도 여럿 우리를 지지해줬지 않소?”

“그러니까 지금 이 일이 정치적인 문제가 되었어요. 발단은 그 광주에 있는 땅입니다. 그 땅을 청년회에 기부한 사람이 조영수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이번에 야당으로 출마를 하려고 했단 말입니다. 그 사람이 재력도 있고 지역에서 꽤 신망이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위협을 느낀 여당 후보 측에서 잡아넣으려고 하는 겁니다. 아예 정치적으로 재기를 못하게 크게 엮었는데 큰 게 뭐겠습니까? 반공법이지요. 청년회를 사회주의 단체라고 몰아서 조영수를 배후인물로 잡아넣었어요.”

“그럼 김재열은 어떻게 된 거요?”

임상호는 주위를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재열이는 총책으로 몰려서 잡혀갔지요. 지금 교도소에 있는데 엄청나게 고문을 당해서 말이 아니에요.” 숨이 막혀왔다. 당장 누군가가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은 불안에 몸이 덜덜 떨렸다.

“나도 면회 갔다 온 재열이 아버지에게 들었는데, 어찌나 당했는지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잡혀 들어간 청년회원들만 삼십 명이 넘습니다. 아무래도 큰 일이 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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