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41회

  • 입력 2014.11.07 15:58
  • 수정 2014.11.07 15:59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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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과 같이 사는 여자를 보고 선택은 아연한 기분이었지만 어쨌든 삼촌이 짝을 만났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어릴 적의 충격으로 정신연령이 낮을 뿐 농사일이나 부엌일을 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거들던 경택도 봄이 오는 대로 서울로 가겠다고 했다. 집에서는 선택이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동생을 건사하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제 한 몸도 재열에게 의지해야하는 신세였다.

하지만 선택의 수원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덜컥 군대 영장이 나온 거였다. 이미 스물 세 살이었으니까 나올 때가 되어서 나온 거지만 막상 영장을 받고 보니 눈앞이 아뜩했다.

“어차피 갔다 와야 할 군대 아닙니까? 저도 내년쯤엔 가야할 텐데, 어쨌든 몸 성히 잘 다녀오세요.”

재열은 권업장에서도 능력 있는 직원으로 꼽혀 곧 정식 직원으로 발령이 날 예정이었다. 물론 재열은 권업장 일보다 수원과 이천, 장호원 일대를 아우르는 청년회 일에 더 열심이었다. 선택도 조직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아서 곳곳을 돌아다녔다. 경기도 지역에만 회원 수가 천여 명에 달했다.

▲ 일러스트 박홍규

선택이 영장을 받을 무렵, 청년회는 생각지 않았던 일을 벌이고 있었다. 여러 모로 발이 넓었던 재열에게 한 지역 유지가 자신이 소유한 산지를 청년회에 희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었다. 청년회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그는 십만 여 평에 이르는 자신의 땅에서 무엇이든 해도 좋다고 했다. 그에 대해 청년회는 긴급히 모임을 갖고 이용 방안을 토의하게 되었다.

“이것은 큰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청년들을 조직하고 농촌운동을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리는 이상적인 농촌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백 마디 말보다 실제로 우리가 그런 이상적인 마을을 만들어서 보여주는 게 훨씬 더 효과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 정도 넓이의 산이면 우리 청년회의 힘으로 개간을 하고 집을 지어 이상적인 마을을 건설하는 게 가능하다고 봅니다.”

노영재를 비롯한 청년회의 이론가들은 꽤나 흥분했다. 재열은 여러 가지로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며 신중한 입장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노영재의 제안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해서 청년회는 이상촌 건설운동이라는 새롭고도 커다란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상촌을 만들 산은 경기도 광주에 있었다. 주로 그 일대의 회원들이 중심이 되고 멀리 충남과 강원도의 회원들까지 찾아와 힘을 보탰다. 한창 힘을 쓰는 젊은이들인데다 자신들이 새로운 마을을 만든다는 꿈에 부풀어서 몇 년이 걸릴 것이라던 계획을 수정해야 할 정도였다. 거기에는 청년회의 뜻을 알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관청의 힘도 컸다. 광주군수는 각종 인허가나 서류 문제 따위를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해주었고 공무원들도 자주 찾아와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이상촌 건설운동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자 자발적으로 청년회에 들어오는 회원들도 급증해서 재열과 선택을 비롯한 지도부는 밤낮없이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조직을 꾸리고 강좌를 열어야 했다. 그렇게 엄청난 열기가 퍼져있을 때 뜻밖에도 영장이 나온 것이었다.

“선택 형, 형이 제대할 때면 여기에 마을이 하나 세워질 것이오. 당연히 다시 여기로 들어오겠지요?”

재열이 배웅하며 빙그레 웃었다. 워낙 다부지기도 했지만 날마다 이어지는 노동에 얼굴이 검게 타고 팔다리는 돌덩이처럼 탄탄해진 모습이었다. 순전히 청년들의 힘만으로 나무를 베고 뿌리를 뽑고 흙을 퍼서 평평하게 고르는 작업은 엄청나게 힘든 노동이었고 재열은 앞장서서 그 일을 해나갔다.

“당연하지. 회원들이 모두 이렇게 고생하는데 나만 빠져서 군대에 가려니 미안하구만. 바쁘지만 편지나 자주 주시게.”

“물론입죠. 여기 돌아가는 소식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편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헤어질 때까지 곧 얼마나 큰 일이 벌어질지 두 사람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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