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없는 감, 청도 반시와 지리산 먹감

  • 입력 2014.11.07 15:57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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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대상포진으로 고생을 하시다 이기지 못하시고 결국 서울 병원으로 가시니 일하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나를 배웅하면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하나 없어 쓸쓸하다. 이런 내 자신을 보면 나는 아직도 어머니로부터 완전하게 독립하지 못하고 사는 반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나에게는 단풍이 한창인 지리산의 능선이 위로가 되어주고 비록 잎은 떨어지고 없지만 꽃보다 고운 색을 자랑하는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들이 있어 위안이 된다. 집을 나서서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단풍들 속에서 단풍보다 더 빛나는 감나무들이 차를 멈추고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든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이다.

가을이 깊어간다는 말은 내가 살고 있는 지리산 북쪽자락의 마을들에서 곶감을 깎는 시기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리의 가게들 앞에 매달린 곶감은 오가는 관광객의 썰렁할 겨울을 따뜻하게 느끼게 할 풍경이 될 것이다. 골짜기마다 들어앉은 마을 안의 가가호호에 매달린 감들 중 어떤 것은 주인의 밥이 될 것이고 어떤 것은 떫은맛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아이들 손에서 주물리다 그들의 입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지리산의 겨울은 곶감으로 한 계절 밥벌이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리산에서 나는 먹감으로 만들어지는 곶감은 그 숫자가 아주 적다. 대부분의 곶감들은 외지의 감산지에서 들여다 깎아 지리산의 바람과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진다. 영광굴비나 안동간고등어와 비슷한 생산과 유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개 청도나 상주의 것을 들여오는데 청도의 반시는 씨가 없는 감이라 지리산의 먹감과는 사촌지간처럼 느껴진다. 허균의 <도문대작>에는 지리산의 먹감에 대해 곶감으로 만들어 먹으면 맛나고 좋다고 쓰여 있다. 나는 먹감이 그냥 먹는 것보다 곶감으로 만들었을 때 더 맛있다는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곶감은 덜 익어 떫을 때 만드는 것으로 감의 떫은맛인 탄닌이 자신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만들어지는 마법이다. 감은 떫은 맛 외에 단맛도 가지고 있으며 독이 없으나 찬 성질을 가진 과일이다. 감의 찬 성질은 곶감으로 숙성되면서 누그러진다. 그러므로 생감은 심장, 폐, 대장을 이롭게 하며 열을 내리는 효능이 있고 우리 몸에 필요한 진액을 만들며 폐를 촉촉하게 해주고 기침을 멎게 하는 등의 효능도 있다.

하지만 <
본초강목>에 보면 게와 함께 먹으면 복통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으니 둘 다 제철인 때라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 또한 감은 고구마와 같이 섭취하면 위장에 결석이 생길 수 있으니 몸이 허약하여 병이 많거나 산후, 감기 등에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탄닌 성분이 많아 과식하면 변비가 될 우려도 있으니 주의해야 하지만 배탈로 인한 설사에는 감을 먹어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

오늘은 냉장고를 뒤지다 작년에 만들어 먹다가 남긴 곶감을 발견했다. 마침 사놓은 청도반시 몇 개가 먹기 좋게 익었기에 곶감은 한입 크기로 자르고 무른 감은 으깨어 고추장과 함께 버무려 밥반찬으로 먹는다. 쫄깃하고 달콤하고 매콤하니 이 가을과 제법 어울리는 반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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