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개방 대책, 말이 아니라 법률로

  • 입력 2014.11.02 17:18
  • 수정 2014.11.02 17:22
  • 기자명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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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호 녀름 부소장

정부가 내년부터 쌀 시장을 관세화로 전면개방하기로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함에 따라 쌀 개방 대책의 핵심은 높은 관세율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고율의 쌀 관세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모든 자유무역협정(FTA/TPP)에서 쌀을 반드시 제외시켜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 국민의 주식인 밥쌀용 쌀을 우리나라에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과 중국밖에 없는데, 하필이면 우리나라는 이 두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WTO 농업협정문에 따라 513% 수준의 관세율을 확보하더라도,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두 나라 가운데 어느 한 나라에게라도 쌀의 관세율을 철폐하거나 대폭 낮춰줄 경우에 고율관세는 유명무실한 빈껍데기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문제에 대해 정작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저 정부의 의지를 믿어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면서 왜 정부의 약속을 믿지 못하느냐고 항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의 말이 농민과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는 것은 정부 스스로 초래한 자업자득이다. 일본과 필리핀처럼 대화와 소통을 통해 쌀 개방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전면개방을 밀어붙여 불신을 자초했다. 지난 10년간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면개방 이외의 다른 대안에 대해서는 그 어떤 노력이나 시도조차 하지 않은 정부에 대해 농민과 국민이 불신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수입쌀이 국내에서 잘 팔릴 수 있도록, 대다수 농민과 국민이 모르는 사이에, 수입쌀과 국내쌀의 혼합 판매를 합법화시켜준 정부를 믿지 못하도록 만든 것 또한 자업자득이다. 수입쌀과 국내쌀의 혼합을 금지하는 법률 제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법 제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어찌 농민과 국민이 정부를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공산품 수출을 늘리기 위해 농업을 희생해야 한다면서 수많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정부를 농민과 국민이 믿지 못하는 것도 정부 스스로 초래한 결과이다.

정부의 의지를 믿지 못하는, 정부의 약속을 불신하는 농민과 국민에게 답답함을 토로하거나 항변하기에 앞서 정부가 저질렀던 잘못된 행태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말로 때우는 약속이 아니라 법률을 통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수입쌀과 국내쌀의 혼합을 금지하는 법률 제정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농민과 국민이 한 목소리로 요구했고, 정부도 약속했으며, 법안도 이미 제출된 상태에서 법 제정을 더 이상 미룰 아무런 이유가 없다. 정부가 먼저 나서서 법 제정 약속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쌀 관세율에 대한 법률도 조속히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높은 수준의 쌀 관세율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법률 제정이다. 이미 농민단체와 전문가들이 법안을 마련하여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난색을 표하면서 법 제정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는 말로 정책을 하는 곳이 아니다. 제도와 법률로서 정책을 하는 곳이다. 정부의 말과 약속이 신뢰를 얻으려면 반드시 법률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돼야 한다. 앞으로 모든 자유무역협정에서 쌀을 제외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거짓말이 아니라면 그 말을 법률로 제정하여 제도적 장치로 만들자는 농민과 국민의 요구를 거부할 그 어떤 이유도 없을 것이다. 쌀 관세율에 관한 법률 제정과 같은 실질적인 대책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말로만 때우려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국정감사도 끝났기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빠른 시일 내에 법률 제정이 가능한 상황이다. 정부가 적당히 말로 때우고 넘어가려는지 아니면 법률 제정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적극적인지 수많은 농민과 국민이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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