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39회

  • 입력 2014.10.26 15:18
  • 수정 2014.10.26 15:19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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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도 놀랐다. 정부에서는 입만 열면 농정이 우선이요, 농민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것처럼 선전을 해대더니 실상은 아예 정책이라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니. 게다가 그런 말을 농림부 당국자에게 직접 들으니 실로 아연할 따름이었다.

이미 마음이 떠난 학교생활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학우들 틈에서 선택은 한 가지 고민에 휩싸였다.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농민운동을 할 것이냐, 아니면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근거지를 마련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고향으로 가려 했는데, 집이 충남 부여 인근인 재열이 자신은 경기도 수원에서 농민운동을 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렸다. 그나 선택이나 조건은 비슷했다. 둘 다 어려운 형편인 집안의 장남이었다.

“선택 형도 마음이 정해지면 나와 함께 가도 됩니다. 실은 수원 쪽에 미리 자리를 좀 잡아놨지요. 뭐, 먼저 농촌운동을 시작한 선배들이 배려해 준 것입니다만.”

“나도 고민인데, 집 문제가 마음에 걸려서.”

어렵게 꺼낸 말이었다. 고등학교까지 뒷바라지를 해준 집에서 거는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다못해 면서기나 선생 정도는 하리라고 믿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타지에서, 그것도 농촌운동을 한다는 자신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아직 막막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쉽게 내보이기엔 어딘지 자신의 허약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망설여졌던 것이다.

“저도 대강 짐작은 합니다만, 선택 형도 마음고생이 많을 것입니다. 시골에서 공부 잘 하는 아들에게 거는 기대야 다 비슷하지요. 우선 집에는 서울에서 취직을 했다고 말씀을 드리지요. 그리고 박봉이지만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취직자리가 쉽게 얻어질 듯도 쉽습니다.”

▲ 일러스트 박홍규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었다. 사실 서울에서도 직장을 잡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대규모 공장들에서는 주로 여공들을 많이 뽑았고 게다가 배운 사람이 가질만한 직장은 공무원 아니면 변변한 게 없었다. 그런데 직장을 가질 수 있다니, 새삼 재열의 발이 넓은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원에는 일제 때부터 해오던 권업청이라는 관청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농업을 기술적으로 보조하는 곳이라고나 할까요. 수목 시험장도 있고 원예사도 있는데 말단 직업이고 꽤나 힘든 곳이기도 합니다만, 우리 같은 사람이 직장으로 삼기에 괜찮을 겁니다. 그곳에서 책임자급으로 있는 분들이 여럿이니까 우리 몇 사람 정도의 취직은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고민할 게 없었다. 어쨌든 관청이고 더구나 농업관련 직종이니까 안성맞춤이었다. 선택은 곧 고향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띄워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공무원으로 취직을 할 계획이며 고향으로는 당분간 내려가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미리 운을 띄워놓아야만 나중에 정식으로 이야기하기에 편할 것 같아서였다. 재열과 임상호까지 셋이서 놀이삼아 수원까지 나들이를 하기도 했다. 몇 년 후에 농촌진흥청으로 다시 개청하는 권업청은 생각보다 꽤 규모가 크긴 했지만 어딘지 쇠락한 느낌이었다. 일하는 사람들도 공무원이 아니라 일용직 막일꾼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 정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재열이 몇 사람을 찾아보고 선택을 소개하기도 했다. 새겨 들어보니 일자리를 얻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듯했다. 웬만한 곳이면 소개나 알음알음으로 취직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선택도 알고 있었다.

“선택형은 저 놈 꼬임에 넘어가서 그예 이런 데 와서 청춘을 썩힐 작정이오?”

늘 빙글거리는 임상호가 재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아, 청춘을 썩히다니? 누가 들으면 내가 아주 몹쓸 사람인 줄 알겠네. 그리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나라 미래를 책임질 사람들이야.”

그러자 임상호가 갑자기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나는 솔직히 깊이 고민해 본 건 아니지만, 요즘 말하는 대로 우리나라도 공업 쪽으로 나가야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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