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 아니면 엇뵈기

  • 입력 2014.10.26 15:15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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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을 건들건들 걷는 모습이 건달 같아서 건달농사꾼이라 했든가. 평생농사를 지어도 아내의 입에서 늘 튀어 나오는 건달농사꾼. 하는 일이 옹골지거나 맵차지 않고, 하는 듯 마는 듯 하는 사람을 두고 건달이라고 했다.

건달의 원래 말이야 간다르바에서 나온 말씀이다. 간다르바는 부처님 곁에서 악기를 다루는 악사들의 이름이다. 실제 석가모니 옆에서 악기를 켜던 건달들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절간에 들어서면 사천왕문을 지나는데, 네 분의 사천왕 중에 악기를 들고 있는 분부터 많은 탱화에는 그렇게 등장한다. 그러니까 건달은 보컬그룹의 다른 이름이지 싶다. 그런데 보컬그룹 사람들이 생업은 안하고 늘 노래에 악기나 켜는 모습이 안 좋게 보였나 보다. 그래 션찮게 일하거나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우리는 건달이라고 한 것이지. 그런데 그게 나를 규정하는 아내의 호칭이 된 사연치고는 억울하다. 열심히 살았고 치열하게 싸웠을 뿐이다.

아내는 나를 ‘건달’이라고 하지만 이웃의 친구 아내는 자신 남편을 ‘엇뵈기’라고 한다. 대엿새 계속되는 가실일에 몸살을 앓고 드러누웠다는 것이다. 농사일이 몸에 배질 않아서 견디지 못하는 엇뵈기 농사꾼이라는 것이지. 이 친구는 영농후계자 초기세대 이면서도 음식점이며 빵꾸집 등을 운영하며 농사일에서 멀어진듯하더니 요즘은 초크베리 농사를 짓는다며 분주하다. 그러니 아내로부터 엇뵈기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엇뵈기는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비슷하게 보는 것으로 사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제대로 일을 치르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아버지 세대의 농민들은 몸으로 농사를 지었다. 정확히 표현 하자면 몸의 감각으로 농사를 지으신 거다. 씨를 뿌리고 거두어들이는 시기, 방법, 노동 이런 것들을 모두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감으로 이뤄냈다. 이걸 통박이라고도 한다. 덕지덕지한 경험은 상태를 보면 결론이 추산되는 경지다. 그런 것들이 제대로 이뤄지지않을 때 건달농사꾼이 되고 엇뵈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농사를 짓는 시대라 감각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 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론 감각이 과학을 앞서기도 한다.

새누리당은 전국에 싯벌건 걸개에 쌀을 지키겠노라는 구호를 적었다. 그런데 그뿐이다. 새누리당에도 청와대에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쌀을 지키겠다는 것인지 내용이 없다. 또 다시 청와대에선 한, 호주 자유무역협정을 서둘러 마무리 하라고 채근한다지. 중국과도 자유무역에 속도를 내겠다지. 그런데 무슨 쌀을 지키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대통령이 공약에 뻥을 튀기고 나몰라라하니 당도 따라서 하는 모양이지. 이쯤 되면 건달이다.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안전하고 안정된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을까. 고민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농식품부정책만 옹호하고 있으면서 513%에 고무된 채 쌀을 지키겠다고 헛소릴 하니 우습지 않은가. 이쯤 되면 엇뵈기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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