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숭숭한 농촌

  • 입력 2014.10.12 19:13
  • 수정 2014.10.12 19:14
  • 기자명 김호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호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

쌀 관세화로 농촌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반만년 우리 민족의 생명을 지켜온 쌀 시장을 너무 쉽고 조용하게(?) 내줘버린 탓일까? 협상의 의지를 가지고 협상의 여지를 찾아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10년 전 혹은 20년 전의 회의결과만을 가지고 미리 포기한 처사에 대해 많은 농민들은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농업의 생존이 걸린 사안에 대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 등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켜 시끌벅적하게 진행했어야 한다. 또 이것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 최대한 활용했어야 한다. 이런 과거형의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울화통이 터지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지난 9월 30일 WTO에 양허표 수정안을 최종 통보함으로써, 이제는 쌀 개방의 여파가 우리 농업·농촌·농민의 어디에까지 미치어 또 얼마나 피해를 줄 것인지가 염려된다. 쌀 관세화에 대한 반대와 조건부 찬성, 무조건 찬성 등 각각의 의견이 나뉘어 논쟁하던 농민단체 간에 감정적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농촌분위기가 뒤숭숭해지고 있다. 대화와 소통이 아닌 권력으로써 국민을 통치하는 독선적인 지배집단은 국민의 분열과 대립을 좋아한다. 또 관련 단체에게 당근을 제시하여 권력에 줄 세우기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쌀 시장 전면개방으로 산지쌀값은 2012년 10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있다. 쌀 자급률을 100%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판국인데도 산지쌀값이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대비 올해의 쌀 재배면적이 2% 감소했다. 공공비축미 선지급금은 5만 2,000원으로 수확기 쌀값 하락을 선도하고 있다. 쌀 농업의 여건이 녹록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몇 년 전 정부가 발표한 식량자급률 목표와 곡물자급률 목표는 어느 창고에서 먼지를 날리고 있는가? 국적불명의 식량자주율이라는 용어를 제시하면서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해외농업개발 사업은 문제점만 양산하고 있다. 해외농업개발을 통해 생산 확보하고자 한 곡물의 양은 계획량의 6% 수준이고, 국내 곡물 수입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06%에 불과하다.

쌀 시장개방의 영향은 쌀 농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쌀 농가가 밭작물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수익성이 낮아 쌀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 농가에게 쌀 시장개방은, 울고 싶은 찰나에 뺨을 때려주는 격이 되었다. 쌀에서 밭작물 생산으로의 전환은 밭작물의 과잉생산으로 이어져 가격파동을 초래할 것이다. 풍선효과이다. 수익성을 찾아 일정한 작물로 생산이 치우치게 되면 연쇄적인 가격폭락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밭작물 직불제와 겨울철 이모작 직불제의 인상, 생산단계에서 출하단계·판매단계까지 포괄하는 수급조절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한다. 쌀 시장 전면개방이 우리 농업·농촌에 총체적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하고 복합적인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초국적 곡물회사의 이윤 극대화 전략이 쌀을 포함한 농업 전반에 걸쳐 적용될 것이다. GMO 종자와 농약 등 농자재를 꾸러미로 묶어 세계 농촌을 장악해왔다. 최근 정부는 다음해부터 폐지되는 저농약 인증을 대체하기 위해 GAP를 지도 보급하고 있다. 농산물품질관리법 시행규칙 및 관련 고시를 개정하여 인증기준을 완화하였다. GAP 개정기준에서 GMO 관련 규정을 삭제하였다. 초국적 곡물회사의 GMO 종자가 아무런 규제 없이 수입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식품 안전과 위생,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관한 사항에 대한 규제는 더욱 강화하는 것이 맞다.

농촌분위기가 뒤숭숭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수년 동안, 농업에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와 물질 중시의 관점을 적용해 온 결과이다.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미래 비전이 비관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 귀에 경 읽기, 메아리 없는 혼잣말에 농민들은 지쳐가고 있다. 농업과 농촌, 생태경관의 가치 보전을 위한 종합적인 방향으로 농정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직접지불제를 농업·농촌의 다원적·공익적 가치에 대한 보상차원으로 재편해야 한다. 식량주권과 청년후계인력 양성을 위한 농업, 생태 및 경관의 유지 보전을 위한 농촌, 농촌공동체의 회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농민의 생활을 유지시킬 수 있어야 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