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식이 새끼

  • 입력 2014.10.11 21:31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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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간에 떠도는 일식이 님, 이식이 놈, 삼식이 새끼라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몇 일 전 고등학교 동창모임을 필자의 과수원에서 치렀다. 삼십 여명 모여서 고기도 굽고 햅쌀밥에 아욱된장국으로 배들을 불렸다. 모두 만족한 듯 초로의 그림자들이 지워진 환한 웃음꽃이 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하나둘씩 현역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며 고민들을 털어 놓는 것이 아닌가. 필자야 평생농부니 퇴직 걱정은 없어 그런 고민을 해보지 못한지라 친구들의 심각함이 가슴에 닿지 않았다.

한 친구가 말하길 혹시라도 퇴직 후에 삼식이 새끼는 되지 말라며 좌중을 폭소로 몰고 갔다. 집에서 한 끼 먹으면 일식이 ‘님’ 이라고 존칭하고 두 끼 먹으면 이식이 ‘놈’이라며 하대를 하고 세끼 다 먹으면 삼식이 새끼라고 욕을 한단다. 퇴직 후에 자기 일을 가지라는 경구성 농담이겠지만 실제 당하는 사람은 우스갯소리 그 이상의 고뇌가 있을법하다.

전후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베이비붐 세대가 이제 무대에서 내려오고 있다. 특히 공업학교 출신들은 ‘산업전사’라고 했지만 실제 자신들은 ‘공돌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산업화에 청춘을 바쳤다. 그동안 다른 직종들로 갈아탄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짧게는 몇 년씩이라도 산업화의 그늘진 곳을 배회했을 것이다. 필자도 그런 경험을 거쳤다. 구로공단의 퇴근시간대에 몰려나오는 젊은 청춘들을 보며 막연하나마 저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결기를 감추기도 했다. 상무에게 불려가 해고를 통고받은 날 통음으로 당산동 어딘가에 쓰러졌다. 그 길로 필자는 아버지의 생업인 배과수원을 대물림해 농부에서 농민으로 거듭났다.

그렇게 30여년이 훌쩍 지나 오로지 농업과 농민을 보며 달려오다 보니 친구들은 한끼를 먹을 것인지 두 끼를 먹을 것인지 고민이 깊어지는 때가 된 것이다. 슬그머니 귀농에 대해 말을 꺼내 봤으나 반응은 별로였다. 마침 황간으로 귀농한 친구가 사과를 가지고와 관심이 있을 줄 알았는데 반응은 신통찮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아마도 농촌이나 농업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 농업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니 농업에 대한 이해가 없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도 농업은 한 물 간 산업, 사양산업, 3D업종 정도로 낙인찍혔으니 그들의 생각을 바로잡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전후세대는 부모가 농사를 짓던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고향을 떠나온 기억과 보상심리가 교묘하게 자리하고 있음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전후세대의 삼식이 논쟁을 접을 수 있는 출구를 농업에서 찾아보자. 어떤 형태로든 농업을 통해 삼식이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농업이든, 텃밭농사든, 아예 귀농을 하든, 남은 생을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결국은 농산물이 제 값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가장 중요한 문제지만 말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농토를 지키며 살아온 농민들은 하늘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자본의 이윤에 부역하는 정부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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