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우리가 만든다.

  • 입력 2014.10.05 22:09
  • 수정 2014.10.05 23:38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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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언 14년의 세월이 흘렀다. 신문의 나이가 신문의 성장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14년간 농민들의 원망과 분노를 함께하고 기록한 역사는 부정할 수 없다. 급변하는 농업. 농촌. 농민의 정세를 능동적으로 함께한 14년이었다. 신문의 역할이 직접 세상을 변화 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농정은 기자로부터 경영진까지 기꺼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촉매가 되고자 노력했다.

2014년 우리 농업은 희망이 없다. 농촌에 농사를 담당하는 1세대가 모두 70세가량의 노인들이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지 언 30여년, 재생산이 되지 않는 농촌에 새싹이 돋아날 기미는 아무 곳에도 없다. 오히려 돋아 오르는 움마저도 잘라 내고야 마는 자본 종속적 농업정책이 횡행 할 뿐이다.

극단적 변화는 쌀의 완전한 개방이다. 이는 우리 정부가 초국적농산복합기업의 자본에 백기 투항한 것이다. 513%의 관세율은 농민무마용에 불과하다. 무역의 기본 양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책당국의 자위에 불과할 뿐이다. 자유무역의 확대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의 전제조건들은 우리 농업의 완전포기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다.

한국농정은 창간이후 오늘까지 모든 농업개방의 흐름을 기록했으며 강도 높은 비판으로 농업해체를 막고 농업의 가치를 역설했다. 농업개방의 역사에서 한국농정의 논조는 농업을 지키려는 농민들의 절규며 국민들의 여망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강조되어야만 하는 농업가치에 대한 역설은 한국농정이 창조적으로 만들어가야 할 부분이다.

글로벌 세계는 좁아지고 있다. 자본의 이윤추구는 반생명임에도 날개를 달고 있다. 농업의 변화도 국내적으로 극단적 이분화가 진행되고 세계적으로 GMO와 Non-GMO의 대결, 생명과 반생명의 대결로 치닫고 있다. 한국농정이 세계를 보는 눈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로 농업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변화하는 정세와 함께 요동치는 농업정세를 제대로 예측하고 앞서 나가야 한다. 농업전문지로서 정보의 한계를 극복하고 통섭적 사고와 지식으로 무장해야한다. 그것이 가장 기초가 되는 신문의 꽃, 기자들의 자세라 할 수 있다. 공부하는 기자, 정보를 제대로 분석 가공하는 기자, 그 토대위에 독자들과의 소통은 원활해 질 수 있다. 그것만이 농민들이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놓을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문사의 자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각 정보의 취합과 분류를 신속히 하고 분석과 대안들이 생산되도록 준비해야한다. 대안은 구체적이고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신문의 힘이 되어야 한다. 그에 따라서 신문이 하고자하는 변화의 촉매구실을 굳건히 할 수 있다.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뉴스와 분석들을 신문의 정체성이며 지향점으로 삼을 것이다.

농업활로는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닌 이상 소비자와의 소통을 고민해야한다. 농민과 소비자를 잇는 다리 역할을 부치는 힘이라도 끌어내야 한다.

어렵게 시작한 신문이다. 독자들의 성화와 채찍질을 달게 받으려고 작심했다. 현시점에서 농업개방을 개관적 입장에서만 보고 신문을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 누군가 나서서 길을 제시하고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면 비록 그 길이 가시덤불이라도 한국농정이 헤쳐 나가야 한다. 또 그렇게 모두가 우리농업에 대한 희망의 끈을 단단히 붙들도록 강조해야한다. 희망을 놓치면 모든 것이 끝장난다. 진실을 근거로 하는 희망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가치일 것이다.

불의한 이 시대 우리에게 맡겨진 소명을 달게 받아 안고 묵묵히 정진하자. 창간 14년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신들메를 조이고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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