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통보로 쌀개방 끝이 아니다

  • 입력 2014.10.05 18:57
  • 수정 2014.10.05 18:59
  • 기자명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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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정부는 기어코 다음해부터 쌀시장을 관세화로 전면 개방하겠다고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했다. 우선 협상부터 해보라는 호소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무조건 관세화만을 밀어붙인 정부의 독단과 독주가 우리의 식량주권과 국민의 밥상에 어떤 참사를 불러올지 쉽사리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정부를 비롯하여 일각에서는 어쨌든 정부가 관세화를 WTO에 통보한 이상 국내에서의 논란은 끝내야 한다는 생각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주요 이해당사국과의 쌀 협상은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고율의 높은 쌀 관세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국내의 안전장치도 마련해야 하고, 쌀 개방 이후 국내 농업의 소득 및 가격정책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WTO에 통보했다고 해서 쌀개방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과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모든 자유무역협정(FTA/TPP)에서 쌀을 제외시켜 고율의 높은 쌀 관세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법으로 마련해야 한다. 아무리 WTO 쌀 협상에서 513% 관세율을 확보하더라도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미국이나 중국 가운데 어느 한 나라에게라도 관세율을 대폭 낮출 경우 정부가 말하는 고율관세는 유명무실한 빈껍데기로 전락하고 수입쌀이 밀려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권한도 없고, 책임도 없는 현 농식품부 장관이 말로만 ‘정부를 믿어 달라’고 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적어도 결정권을 갖고 있는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농민과 국민에게 직접 약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말로만 약속할 것이 아니라 이미 농민들이 제안한 바 있는 관세율 변경에 관한 법률 제정이 더욱 중요하다. 믿어 달라는 정부의 말이 진심이라면 그 내용을 법으로 제정하자는 농민의 요구를 정부가 거부할 어떠한 이유도 없을 것이다.

또한 쌀을 비롯한 농산물의 소득 및 가격제도 역시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쌀 농업에 대한 직접적인 대책으로 쌀 소득보전을 위해 목표가격 및 고정 직접지불을 대폭 인상하는 것이다. 쌀 개방으로 쌀농사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작목전환으로 인해 그나마 몇 안 되는 주요 농산물도 연쇄적인 가격폭락의 우려가 매우 크기 때문에 밭농업 직접지불을 확대하는 소득보전 대책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이처럼 쌀농업과 밭농업에 대한 단기적인 소득보전 대책과 중장기적으로 소득 및 가격제도 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쌀을 비롯한 기초농산물의 수급안정과 가격안정 및 소득보전을 위해 농민단체가 제안하고 있는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와 같은 획기적인 안정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편, 이제 본격적으로 주요 이해당사국과 벌이게 될 쌀 협상에서는 높은 관세율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별 쿼터 문제, 의무수입물량의 해외원조 및 대북지원 문제, 밥쌀용 쌀 수입 문제 등 우리나라의 자율적인 권한을 간섭하고 규제하는 독소조항들을 없애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독단과 독선에 사로잡힌 정부에게 이해당사국과의 쌀 협상을 전적으로 맡겨두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여당과 야당을 비롯한 국회와 직접 이해당사자인 농민단체가 정부의 쌀 협상 과정 전체를 점검하고 감독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다. 농민이나 국민과 소통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풀어나갔던 일본과 필리핀의 선례를 우리도 배워야 한다. 따라서 여야 정당과 국회 그리고 농민이 쌀 개방 문제를 다룰 4자 협의체를 구성할 필요성이 더욱 높아진 상황이다. 그리고 이 4자 협의체는 쌀 협상 문제 외에도 쌀농업 및 밭농업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역할도 담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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