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36회

  • 입력 2014.10.05 16:39
  • 수정 2014.10.05 16:40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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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선택은 두 사람과 작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애민청년회라는 단체의 일원이 된 게 어떤 의미인지 아직은 가늠할 수 없었다. 다만 재열을 비롯해서 거기 모인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청년회는 매달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창립일 때처럼 스무 명이 넘게 모이는 날도 있고 때로는 예닐곱 명이 모일 때도 있었다. 선택은 모임에 빠지지 않았다. 대개 임상호의 집이었고 때로는 학교 뒷산이나 청계천변에서 야유회처럼 만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꼬박꼬박 참석하는 이들이 단체의 지도부를 형성했다. 조성구가 회장이었고 재열이 모든 일을 관장하는 총무였다. 재열은 이미 학교생활보다 단체의 일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선택도 마찬가지였다. 모임에서는 늘 학습과 토론이 이어졌는데 그를 통해서 선택은 농촌문제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꿰뚫을 수 있었다.

재열은 협동조합운동에 대해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토론 때마다 그는 협동조합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자연스럽게 애민청년회의 방향은 협동조합운동으로 길을 잡아나가게 되었다.

“협동조합운동의 불가피성은 농촌 현실에서 비롯됩니다. 작은 땅을 경작하는 농민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지켜내는 길은 함께 협동하는 길 뿐입니다. 농민들의 이해를 우선적으로 하는 조합을 건설해서 공동 생산, 공동 판매하는 조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게 우리의 첫 번째 목표입니다. 문맹퇴치운동이나 도박근절 같은 생활상의 향상 문제도 협동조합 조직이 건설되면 훨씬 수월하게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선택으로서는 전에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였다. 나름대로 농촌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대안을 찾으려고 해보았지만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무작정 농촌운동에 투신하겠다는 결심이 섰을 뿐,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런데 협동조합운동에 대한 공부와 토론을 하면서 눈이 번쩍 띄어지는 것 같았다. 이게 바로 농민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김재열 동지의 말에 적극 찬성합니다만 이 문제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역시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서울대학의 노영재였다.

“이미 전국에 걸쳐 협동조합이 결성되고 있습니다만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협동조합과 성격이 다르지요. 명칭부터 농촌실행협동조합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과거 협동조합운동이 사회주의운동이었다는 점을 의식한 명칭이라고 생각됩니다. 일제 치하에서 전개되었던 농민운동이 대부분 농조, 즉 농민조합이라는 조직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금도 조합이라고 하면 그 때의 농조, 적색농조라고도 했는데, 그 사회주의가 떠오르는 것입니다. 지금의 관료나 정치권에서는 협동조합이라는 말만 들어도 무조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일제하에서 지주들이었으니까 그렇게 반응하는 겁니다만 하여튼 조심해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선택은 또 한 번 놀랐다. 일제 치하의 농민운동이 협동조합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도 놀랍고 당시 지주들이 지금의 지배층이 되어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권태헌 선생 같은 이들이 농림부에 있으면서 협동조합을 추진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게 사실입니다. 기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음에는 권태헌 선생을 초대해서 말씀을 듣는 게 어떻겠습니까?”

선택으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김동지가 권 선생을 잘 아십니까? 그 분 모시고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으면 더 없이 좋지요.”

“제가 그 분을 몇 번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우리 애민청년회에 대해서는 모르고 계시지만 농촌문제를 고민하는 청년들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부탁하면 아마 기꺼이 응하실 것입니다.”

언제나처럼 재열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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