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성 강한 경상도의 매운맛, 고추장물

  • 입력 2014.09.26 23:27
  • 수정 2014.09.26 23:28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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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탄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흔히 하는 말로 인생의 매운맛을 모른다고들 한다. 달콤한 삶에 매운맛이 더해져야 제대로 어른이 되는 것인지 음식을 먹는 방법도 우리의 인생과 흡사한 것 같다. 어릴 때는 담담하고 달콤한 음식 위주로 먹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짜고 시고 매운맛을 즐기게 되니 말이다.

우리가 혀로 느끼는 맛 중에 최고의 강한 맛은 단연 매운맛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살이의 어지간한 굴곡쯤은 이겨내는 힘이 생긴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까닭에 아마도 그와 비례해서 음식을 대하는 태도도 좀 더 자극적이고 강한 맛을 자꾸 찾는 것으로 바뀌는가 보다. 우리 집에만 봐도 음식을 하는 나는 자꾸 매운맛을 높이는 음식을 하게 되고 남편은 매운 고추를 한 끼도 거르지 않고 챙겨 먹는다. 과장 없이 말하면 고추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부터 서리가 내려 더 이상 고추를 딸 수 없을 때까지 아예 매운 고추를 직접 따서 밥상에 들고 나타난다.

아마도 매운맛에 대한 욕구는 우리 집의 남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보다. 특히나 매운맛에 곁들여 감칠맛의 극상을 보여주는 음식이 경상도 지역에서 전해지는 것을 보면. 멸치고추간장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고추장물이라고도 부르는 음식이 바로 그것인데 아주 매운 고추와 멸치가 반반 들어가는 음식이니 얼마나 맵고 얼마나 감칠맛이 나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게다가 고추장물의 간을 하는 재료 또한 이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집에서 담근 간장이라 콩의 단백질이 분해되어 나오는 감칠맛이 더해지므로 이 음식은 내가 아는 최고의 음식이며 동시에 양념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나는 함양으로 이주한 여성들에게 우리 음식의 조리법을 알려주는 수업을 하고 있다. 그들의 요구에 따라 메뉴가 정해지기도 하고 나의 필요에 의해서도 메뉴가 정해지는데 멸치고추간장은 그들과 나의 요구가 합쳐진 몇 안 되는 음식 중의 하나다. 수업이 끝나고 실습했던 음식을 싸갔던 그녀들이 다음날 내게 전한 말은 남편들이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들의 남편들도 우리 집 남자처럼 매운 음식을 엄청 좋아하는가 보다.

고추장물(혹은 멸치고추간장)은 손질한 멸치와 같은 양의 매운 고추를 다져서 들기름에 볶다가 집에서 담근 간장을 부어 한 번 더 끓이면 되는 음식이다. 마늘을 좀 넣기도 하고 참기름과 통깨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만들기도 쉽지만 일단 한 번 먹어보면 자꾸 생각나는 중독성이 강한 음식이다. 경상도가 고향이라 이 음식을 먹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고향을 생각하거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고추장물은 입맛이 없고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 밥을 비벼 먹으면 좋다. 혹 계절이 호박잎쌈을 먹을 수 있는 때라면 쌈장으로 대신해도 된다. 양배추를 쪄서 쌈을 싸도 그만이다. 나물을 무칠 때도 이것으로 무치면 매콤하고도 깊은 맛이 난다.

스트레스로 폭발할 것 같다면 지리산으로 오시라. 고추장물에 따끈한 밥 한 공기로 차리는 밥상은 언제라도 대접할 수 있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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