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34회

  • 입력 2014.09.21 21:11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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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예수의 제자나 하느님의 아들뻘 되는 이들이 셋이나 나타나 이적을 행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근래 들어서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음은 선택도 실감하고 있었다. 선택이 살고 있는 집에서 학교까지 오가는 길에만 해도 전에 못 보던 교회가 열 개도 넘게 생겨났다. 가정집 같은 작은 건물에 십자가를 세워두고 감리교다, 장로교다 하는 명패를 붙여놓았는데, 선택으로서는 오리무중이었다. 교회라고는 고향 마을 언덕배기에 있던 개척교회라고 불리던 곳에 두어 번 기웃거려본 게 다였다. 그런데 요즘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들은 기존의 교회와도 또 다른 모양이었다. 조성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헛기침을 몇 번 하며 목을 다듬었다.

“조금 전에 김재열 동지가 3월에 가보았다는 남산 집회는 아마 박태선이라는 이가 하는 전도관 집회였을 겁니다. 그 외에도 문선명이라는 이가 하는 통일교, 나운몽이라는 이가 하는 기도원 운동이 장안의 화제입니다. 신흥종교라고는 하지만 기실 세 가지가 모다 기독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병을 고친다고도 하고 입에서 불이 나온다고도 해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린다고 하는데, 그거야 믿을 수 없는 노릇이지요. 온갖 기적을 행한다고 하니까, 우매한 백성들이 혹하는 것일 텐데 냉철하게 보면 혹세무민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둘 것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조성구가 설명을 마치자 처음 이야기를 꺼냈던 안경잡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그들의 주장하는 바가 기존의 교회와 다른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이 옛 이스라엘을 버리고 우리나라를 새로운 이스라엘로 선택했다는 주장이나, 예수가 재림할 나라가 동방의 한국이라고 주장하는 통일교의 논리는 서양의 기독교를 나름대로 우리 식으로 해석한 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즉, 기독교를 민족적 성격으로 바꾸어내고 그를 통해서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자신감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지향하는 바와 적잖이 일치하는 면이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성구나 안경잡이의 말을 들으며 선택은 왠지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신은 그들처럼 사회 문제를 깊이 알지 못할뿐더러 민족의 앞날 따위를 그처럼 깊이 고민해보지도 않았다. 모인 이들은 나이답지 않게 우국지사들처럼 보였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건 역시 재열의 몫이었다.

“제가 지난 번 그들의 집회에 갔던 것도 역시 노영재 동지가 말씀하신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뚜렷하게 민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 우리나라가 나아는 데 있어서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우선 일제 치하나 6.25 전쟁을 하느님이 우리에게 큰 복을 주기 위해 내린 시련이었다고 주장하는 게 황당무계했고요, 미신과 다를 바 없는 이적 따위로 교주를 포장하는 것, 가난한 백성들에게 헌금을 강요하는 것 따위는 분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제 결론은 저들의 민족적인 포장은 포교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의견은 그러한데, 하여튼 쉽게 수그러들 세력은 아닌 듯 하니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재열이 이야기하는 동안 몇 사람이 더 들어왔다. 이윽고 넓은 대청마루가 그들먹하도록 청년들이 들어찼다. 늦게 온 사람들과 인사가 오가고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조성구에게 들었고 나름대로 짐작한 것과 같이 이들은 여러 학교에서 학도호국단 활동을 하며 농촌계몽운동에 핵심적으로 참여한 학생들이었다.

“여기 모인 여러 동지들은 그 동안 우리 농촌과 농민의 현실을 접하면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농민운동에 뜻을 세운 분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결의해야 할 것은 두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학교를 떠나는 동지들이 많아지는 시점에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일이 첫째요, 우리가 앞으로 해나가야 할 운동의 내용을 정하는 게 두 번째입니다.”

재열이 잠시 말을 멈추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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