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업의 메카인 충남 홍성군 홍동면이 심상찮다. 지역 유기농생산자단체의 경영위기에 관한 책임을 둘러싼 논쟁이 불붙으며 전국 규모의 생협조직에 유기농가들이 종속되고 있다는 우려가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신성식 ICOOP(아이쿱)생협 생산법인 경영대표는 지난 4월 <협동조합 다시 생각하기>를 출간했다. 신 대표는 이 책에 쓴 ‘홍성 풀무생협&영농의 경영위기와 개선과정에 대한 평가’를 통해 박종권 전 풀무환경농업영농조합(이하 풀무영농) 이사장 등 전 임원진의 부실경영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생산자들이 생협과 맺는 거래조건이 악화됐다는 지적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풀무영농은 2003년 풀무생협 생산자들이 설립했으며 2006년 유기농 쌀 판매사업에 큰 타격을 입고 경영난에 시달렸다. 당시 유기농 쌀 생산량이 증가하며 소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풀무생협은 계속된 적자 누적으로 경영난이 심화되자 2009년 생협연대에 물류 및 회계를 위탁한다. 그리고 신성식 대표가 경영이사로 취임해 경영개선작업을 맡았다. 그 뒤 풀무영농은 2011년 별도로 만든 3개 생산법인(주곡·축산·채소)이 기존 부채 일부를 분담하는 등 구조개선 작업을 통해 경영정상화 수순을 밟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풀무영농 본부 건물과 주변 토지는 아이쿱생협 산하 물류사업체에 소유권이 넘어갔다. 풀무영농은 아이쿱생협에 판매 농산물 전량을 의존하는 상황이다.
이창용 풀무영농 대표는 “종전 다양한 거래처는 안정적으로 판매자금을 환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제값을 받지 못하고 떼먹히는 사례도 있었다”며 “아이쿱생협과 거래만 집중하니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전엔 기반시설을 갖추는데 빚을 얻어 투자하는 바람에 악재가 계속 겹쳤다. 가공과 유통에 막히면서 수없이 망하는 걸 두 눈으로 봤다”며 농산물 생산에만 주력하는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아이쿱생협의 구매계약에 불만을 표하는 생산자 조합원도 있었다. A 조합원은 “아이쿱생협에서 유기농 고추 1근당 1만원에 사겠다고 제시했다. 그래서 노지밭에선 1평에 1근 따기도 어렵다 1만5,000원은 돼야한다고 말하니까 경상도지역은 평당 3근을 딴다며 1만원 이상 주지 못한다고 버텼다”고 귀띔했다. 그는 “양배추 1개당 900원에 계약해 엊그제 출하했는데 아이쿱생협은 609원을 주고 남은 차액은 가격안정기금을 풀어 메꾸더라. 정상적인 수확인데 영문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B 조합원은 “막상 단가를 정하고 계약해도 출하할 때 소비자들이 싼 가격을 원한다며 가격협상을 다시하기도 한다”며 “이럴거면 뭣하러 계약생산을 하겠나. 속상해 가격협상 회의에 참석도 안했다”고 탄식했다. 지난해 고구마는 출하할 때 계약 당시 가격보다 10%나 인하했다고 한다. 이어 그는 “무를 100톤을 계약해도 한꺼번에 가져가는 게 아니다. 저온창고에 저장하는데 이 곳에서 무가 썩으면 농가 책임이다. 심지어 매장에 팔던 채소류를 반품하기도 한다”며 “유통은 생협이 책임져야 하는데 농민들이 항상 약자다. 엄청 싸웠지만 시정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서현철 홍성 아이쿱생산자회 간사는 “매년 쌀 수매가를 40㎏당 1,000원씩 올렸다”면서도 “아이쿱은 생산비보장 개념은 버렸다. 그보다 생산된 농사물이 다 팔려야 소득이 보장된다. 가격이 높아도 팔리는 양이 적으면 소득이 안되지만 단가가 낮더라도 더 많이 판다면 농민에게 소득이 된다”고 주장했다. 서 간사는 “원인에 따라 산지에 반품하기도 하지만 엄청난 리스크를 줄만큼 반품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생협과 생산자 사이 계약이 기울게 된 원인을 생협의 구매를 중심으로 농가를 수직적으로 계열화하려는 데 원인을 찾기도 한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풀무영농 상무로 활동한 김영규 충남친환경농업 유통지원사업단 대표는 “같은 기간 생산지보다 더 크게 생협이 규모화되며 대등한 협력관계 구축이 어려워지고 상하관계로 전환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대표는 “풀무영농은 쌀 센터 등 기반시설을 농민들의 출자가 아닌 차입으로 운영했다. 어려운 농민들에게서 가급적 돈을 걷지 말자는 판단이었지만 적자를 메울 수익이 없는 게 문제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농민들 스스로 자주적 조직을 유지하려면 스스로 운영하는 힘이 필요하다”며 “유기농 산지가 늘어가는 상황에 농민들이 가격결정권을 갖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