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33회

  • 입력 2014.09.06 01:46
  • 수정 2014.09.06 01:48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채 마루에는 열댓 명쯤 되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재열과 선택이 다가가자 일제히 웃음을 띠며 저마다 반가운 인사를 한 마디씩 건넸다. 물론 처음 보는 선택을 향해서가 아닌, 재열을 향한 인사였다.

“아, 어서 오십시오. 그래, 왔구나. 선배님, 그간 안녕하셨지요?”

재열은 짧은 동안에 그들과 제가끔 인사를 나누었다. 연배가 서로 다른 이들이 많은지 인사하는 내용이 다 제각각이었다. 재열의 몸놀림이나 말솜씨는 능수능란했다. 순식간에 여럿의 중심이 되는 느낌인데 그게 퍽이나 자연스러웠다. 흩어져 앉아있던 사람들이 재열을 중심으로 자리가 정돈되었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이가 절반쯤 되어 보였다.

“오늘 새로 오신 분을 먼저 소개드리겠습니다. 중앙고 대표로 오신 정선택 동지입니다. 저와는 진즉부터 인연이 있는 분이고 또 여기 조성구 선배님의 추천이 있었으니까 우리와 좋은 동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박수로 환영합시다.”

재열이 말을 마치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동지라니. 제 이름 뒤에 붙은 그 말이 어색하긴 했지만 선택은 일어나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선택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무래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 재열과 조성구는 이미 선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음이 분명했다. 머리가 비상한 재열이 중앙고의 정선택이라는 이름을 들었다면 예의 기차에서 만난 선택을 떠올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오늘 만났을 때 재열은 마치 우연히 만난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지 않았던가. 잠시 재열에 대한 의심이 피어올랐다. 자신이 혹시 어떤 일에 이용되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의구심이 일자, 처음 참석한 모임에 대해서도 의혹이 일었다. 임상호가 일을 낼 모양, 운운했던 것도 마음에 걸렸다. 마음 한 구석에 두려운 마음이 일었지만 몸을 빼서 자리를 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재열을 의심하는 것보다 믿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선택은 찬찬히 모인 면면들을 살펴보았다. 어차피 또래는 비슷할 터였다. 콧수염을 길러서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이가 두엇 있었지만 수염만 밀면 스무 살 안팎일 것이었다. 교실에서 늘 보는 얼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런 젊은이들이었는데, 표정은 미소를 짓고 있으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아직 못 오신 분이 네 명이네요. 너무 오래 기다리지는 말고 이십 분만 더 기다리기로 하지요. 그 사이에 오늘 안건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고요.”

재열이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자신감 넘치는 어조며 듣는 이들 모두 그에 따르는 모습이 그러했는데, 또래가 모인 교실에서 반장이 갖는 정도의 주도가 아닌 담임 선생님 정도의 주도권을 가진 듯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재열이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었던가. 선택은 자신이 처음 느꼈던 재열에 대한 인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식으로 또래들 사이에서 지도력을 보이는 사람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모임에는 재열보다 나이기 많아 보이는 축들도 꽤 있었다. 선택 자신도 재열보다 한 살이 위였다.

“오늘 안건과 조금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요즘 엄청나게 이목을 끌고 있는 신흥종교운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일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사복을 입고 머리를 기른 이였다. 검은 뿔테 안경에 깡마른 모습이 날카로운 인상을 주었다. 사회자 격인 재열이 말을 받았다.

“네. 서울대 노영재 동지가 말씀하신 신흥종교운동은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저 역시 지난 3월에 남산에서 벌어졌던, 그 대단한 집회에 가보았습니다만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회문제를 잘 알고 계시는 조성구 선배님이 먼저 운을 떼어주시죠?”

재열이 좌중을 훑어보다가 조성구와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다. 선택으로서도 궁금한 문제였다. 요즘 들어 신문이나 잡지에 별별 이야기가 다 올라오고 있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