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32회

  • 입력 2014.08.31 17:11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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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야 시인이기도 하지만, 본래 이승만 대통령 비서관을 지낸 정치인이기도 하잖아. 그러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뭐.”

임상호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선택은 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다. 김광섭이라는 시인 이름은 선택도 들어본 적이 있지만 서울신문에 실린 그 사람의 시라는 걸 본 적이 없어서였다.

“무슨 이야깁니까? 그 사람이 어떤 시를 발표했기에?”

선택의 물음에 재열 역시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올해가 이승만 대통령이 여든 살이 되는 해라는 건 알고 있지요? 집집마다 태극기를 걸라고 난리를 치고 지폐에 대통령 얼굴을 새기고, 하여튼 요란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시인이라는 자가 칭송하는 시를 발표했는데, 차마 눈 뜨고 보기가 어렵더란 말입니다. 뭐, 꼭 그 사람뿐 아니지만 세기의 태양 운운 하는 걸 보니까 내가 다 부끄럽더군요.”


재열의 말은 어딘가 듣는 사람을 강하게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 꾸밈없는 태도가 설령 자기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할 때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선택 역시 대통령의 탄신 어쩌고 하며 온갖 행사를 펼치는 것에 대해 꽤나 짜증이 났었다. 학도호국단의 동원령에 따라 대통령 생일이었던 3월 말 어느 날에는 중앙고에서만 수백 명의 학생이 서울운동장에 집결하였다. 손에 들고 흔들 태극기를 사는 데 필요하다며 참석 학생들에게 십 환씩을 걷었는데, 그에 대해 작은 반발이 일기도 했다. 굳이 반강제로 참여하게 하면서 자기 돈으로 태극기까지 사야 하느냐는 당연한 반발이었고 선택도 동조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도의 선생은 그런 반발에 대해 극도로 흥분한 어조로 질타했다.

“우리가 이승만 대통령을 모시고 사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고 이 나라의 복입니다. 그 분의 탄신 팔십 주년은 우리나라와 전 세계 반공자유진영의 큰 영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념식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만도 영광스러운데 고작 십 환의 돈을 내는 걸 불만하면 되겠습니까? 나는 여러분의 반공 교육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커다란 실망을 느낍니다.”

운운하는 바람에 불만이 있던 축들도 꼼짝없이 십 환씩을 내고 태극기 한 장씩을 받아들었다. 생일 기념식이라는 이상한 행사에는 학생뿐 아니라 모든 정부 각료와 미군 사령부, 해외 사절까지 모여서 군대 사열식까지 벌어졌다. 처음 보는 굉장한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지만 조선시대의 왕도 아닌 대통령의 생일을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하는 의문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대통령이나 정부를 비판하는 행위는 이적행위라고 규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신문사 주필이 정부 행사에 학생들을 동원하지 말라는 글을 썼다가 구속까지 되는 일도 있었다. 게다가 그 신문사에 정체불명의 폭력배 수십 명이 들이닥쳐 온갖 기물을 때려 부수고 신문사 직원들을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었지만 경찰의 발표는 놀라웠다. 대낮에 일어난 테러이기 때문에 테러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소위 애국 청년들이 애국심에 불타서 일으킨 행동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해괴한 이야기였다. 겨우 학생들을 행사에 동원하지 말라는 칼럼 하나가 그런 엄청난 사태를 불러올 정도였으니, 정부나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려웠다.

그런데 재열의 어투에는 별 거리낌이 없었다.

“하여튼 민도도 낮지만 국가도 봉건시대나 다름이 없다니까요. 나이 든 대통령 밑에서 온갖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국민들만 죽어나지요. 자, 이제 우리는 그만 가볼까요? 누가 오는 기척이 있으니까 가서 맞아야죠. 상호 너는 정말 안 갈래? 옵서버로 앉아있을 자격은 내가 줄 수 있는데.”

“나는 됐다. 난 늬가 가져다준 사상곈가 하는 잡지나 읽으련다. 그리고 정형은 이제 집을 알았으니까 자주 놀러오세요. 언제나 환영이니까.”

선택은 재열을 따라 다시 안채로 들어섰다. 여러 사람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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