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밭을 보면서

이중기의 농사이야기 - 20

  • 입력 2008.01.28 09:52
  • 기자명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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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바빠 죽겠는데 반갑지 않은 평론가 손님(?)이 쳐들어와서 하루를 함께 보내며 얘기를 들으면서 사진도 몇 장 박자고 유혹을 하는데 얼굴을 찌푸리며 거절할 수가 없어 해서 오전 10시부터 몸값도 없는 인질(?)이 되어 빗속의 영천 일대를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인터뷰를 위한 이른바 동행취재라는 것인데 참 딱하게 되었다.

고문의 서두는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개정에 찬성했느냐는 골치 아픈 문제부터였다. 당신 같으면 찬성할 수 있겠느냐고 나는 그의 한번 매질에 삐딱하게 에둘러서 자백을 해버린다. 그러자 그는 끝까지 잔류할 것이냐고 몽둥이를 내리친다. 고문은 가혹하다. 내가 입술을 묘하게 비틀며 대답을 회피하자 이번에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전망을 자백하라고 한다.

한나라당을 수구보수꼴통이라고 매도하는데 그건 결코 아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우리나라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만큼 수구보수꼴통이 어디 있더냐. 권력이 싸가지 없는 짓거리를 하면 전농은 정권의 멱살을 잡고 맞장을 뜬다. 한나라당처럼 싸가지 없이 발목을 잡지는 않는다. 유치하다. 내가 권력을 빼앗긴 통합신당의 정치꾼이 아니고 시인인데 고문의 방식을 좀 바꾸자.

나의 짜증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대화는 한동안 끊어졌다. 신원골로 들어서자 그쳤던 비가 다시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당신의 시를 보면 농부라는 말을 거부하고 농민을 고집하시던데, ‘농민’과 ‘농부’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고 느껴지는데 어떻게 다른가?

팔공산 아래 은해사의 말사인 거조암 영산정을 둘러보고 신녕 쪽으로 가다가 젊은 평론가는 느닷없는 질문을 던져왔다. 나는 잠시 난감해하며 28번국도 양쪽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는 마늘밭과 양파밭을 응시한다. 이 땅에 아직도 ‘농부’가 존재하고 있었던가?

나는 시에서 ‘농민’과 ‘농부’의 개념을 달리 정의한다. 철저하게 농산물의 상품화를 위해 투자하다 보니 빚을 많이 진,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농민’이다. 투자가 두렵고 또 그럴만한 여력이 되지 않아 옛날 방식의 농사를 고집한 덕분에 비교적 빚이 적거나 거의 없는 늙은 사람들을 ‘농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정권이 그걸 뭉뚱그려 ‘농업인’이라고 명명해버렸다. 농민들의 품위향상을 꾀한 아주 괜찮은 발상이었다고 하니 소가 웃을 일이지.

그렇게 말을 하면서 나는 낯을 붉힌다. 궁색하여 땟물이 줄줄 흐르는 내 말에 내가 다치고 만 꼴이다. 그것을 알아챘는지 평론가는 좀 더 노골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나는 그가 듣고 싶은 말을 기어이 하지 못한다. ‘한농연’과 ‘전농’의 간극을? 그래서 나는 멀리 튀어버린다.

나는 좌파야. 그런 점에서 전농은 게릴라가 되어야 해. 아마도 밀림이 있었다면 나는 빨치산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28번 국도 좌우로 펼쳐진 마늘밭을 나는 애써 외면한다. 저 대안 없음의 막막함. 어처구니 없음의 가소로움. 난지형이라 불리는 외래종 마늘을 내 눈길이 마냥 심드렁해 하는 이유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언제였던가, 폴리에틸렌과 휴대폰 전면 수입중단이라는 기가 막히는 선언으로 286%나 되는 긴급관세 장벽을 일거에 뭉개버린 중국, 내공이 육십갑자가 넘는 중원고수가 펼친 절묘한 무공 앞에 벌벌 떨기만 하던 한 나라의 통상외교가 우리 농민들을 얼마나 열패감에 떨게 했던가.

그리하여 많은 농가들이 마늘을 포기하고 양파로 몰려 재배 면적이 10% 가까이 늘어나 가격이 폭락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농산물은 ±5%에서 폭등과 폭락의 희비가 교차한다.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의 차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2월 임시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비준하고 그 여세를 몰아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겠다고 하니 전농에게 멱살 잡힐 일만 남은 것 같다. ‘여론은 듣되 운하는 판다,’ 라고 호언하는 꼴이 노무현 정권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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