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팔아먹은 놈

  • 입력 2014.08.29 13:24
  • 수정 2014.08.29 13:26
  • 기자명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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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농민들 사이에서 ‘논 팔아먹는 놈’은 문제 있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도박에 빠지거나 주색잡기에 빠지면 논 팔아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자식 대학 등록금 등 딱한 사정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돈 함부로 쓰다가 막장으로 가면 논을 팔아 연명한다.

논은 단순한 재산가치가 아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고,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 주어야할 장손과 같은 존재이다. 그런 논을 팔아치우는 것은 대가 끊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농민은 농지를 소중히 관리하는 것을 무엇보다 귀중히 여겼고, 국가도 마찬가지다. 헌법 121조에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를 명시해서 정부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농지를 보호하도록 법제화하고 있다.

그러나 자식들 중에 논을 팔아먹는 불효자가 있듯이 대통령 중에서도 농지를 팔아치우는 폭군이 나타났다. 8월 20일 농식품부는 농지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농지규제 합리화라는 명분으로 농지소유 자격을 확대하고 농업진흥구역 행위제한을 완화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이번 규제완화에는 놀라운 내용이 숨어있다. 기업의 농지소유를 열어준 것이다. 그 동안 농업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농업연구기관까지만 농지소유를 허용했으나 이제는 시험·연구·실습 목적의 농지 취득 허용 대상에 농업연구를 수행하는 ‘바이오·벤처기업 연구소’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기업들이 마음만 먹으면 여러 편법을 동원해 농지취득에 나설 수 있게 되어 있다. 즉 기업이 연구목적의 핑계를 대고 농지투기에 뛰어들 수 있는 문을 열어 준 것이다. 이는 시초에 불과하며 이런 추세라면 기업들의 농지 취득 자격은 더욱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경자유전의 원칙을 근본에서 허물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발표가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정부는 쌀 관세화 선언을 하면서 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농지 보전’을 약속했다. 그도 그럴 것이 쌀 자급률이 80%대로 떨어진 이유가 농지감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농지감소는 너무나 가파르다. 2000년 189만ha에 이르던 경지면적은 2013년 171만ha로 10여년 사이 10%나 감소했고, 쌀 경지면적 또한 2000년 107만ha에서 2013년 83만ha로 20% 이상 감소했다. 이런 흐름을 막지 못하면 관세율 1,000%를 물더라도 쌀을 수입해야 하는 위중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농지보전 약속을 한 달 만에 뒤집고 오히려 농지감소에 가속도를 달아주었다.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다. 눈동자가 풀린 상태가 되어 ‘땅문서’를 사채업자에게 팔아치우는 행위이다.

‘논을 팔아먹는’ 국가적 타락은 다음 달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고상하게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규제개혁의 이름으로 포장될 것이며, 땅투기에 군침을 흘리는 기업들은 환호의 함성을 지를 것이다. ‘논 팔아먹는 놈’은 개과천선하지 않으면 끝내 ‘마누라까지 팔아먹는 놈’으로 간다.

대통령이 경자유전을 포기하면 다음으로 가는 길은 정해져 있다. ‘농민을 팔아 먹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민은 불쌍하다. 벌써 팔려 나가고 있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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