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오지마을 달리는 서천군 희망택시

“자식보다 택시가 낫다니까” 어르신들의 든든한 교통수단

  • 입력 2014.08.29 12:29
  • 수정 2014.08.31 21:15
  • 기자명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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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군에는 특이하게 정해진 시간, 노선에 따라 운행하는 택시가 있다. 지난해 군이 도입한 ‘희망택시’, 일명 ‘100원 택시’다. 농어촌버스의 혜택이 닿지 않는 오지마을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시작된 희망택시는 1년이 지난 지금, 타 시·군에서 벤치마킹하고 있을 정도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희망택시가 운영되는 탑시마을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하고 경사진 산길의 연속이었다. 버스가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좁은 이 길을 차로 30분 남짓 달리며 목격한 버스 정류장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60대 이상 인구가 대부분인 이 지역에서 주민들은 어떻게 생활했던 걸까. 탑시마을에서 희망택시를 이용하는 유복녀(78)씨에게 이를 묻자 “저 마을 밑까지 가서 버스 탔지 뭐”라며 별 수 있냐는 표정을 짓는다. 보통 이곳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도보로 걸리는 시간은 30분~1시간 정도. 정류장까지 간다고 해서 바로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내버스가 하루에 2~3번만 운행하기 때문에 정류장에서는 또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이 이어진다. 때문에 개인적인 운송수단이 없는 마을주민들이 시내로 나간다는 것은 정말 ‘큰 맘 먹고’ 가는 일이었다. 거동이 불편해 버스를 이용하기 힘든 주민들은 간혹 콜택시를 부르기도 했는데 1만6,000~7,000원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자주 이용할 만한 교통수단은 아니었다.

▲ 희망택시 운행시간표. 정해진 날자와 시간에 택시가 마을을 방문한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다. 시내에 장이 서는 날이면 어김없이 택시가 마을까지 들어온다. 탑시마을에는한달에 8번 희망택시가 들어오는데 홍산장, 한산장, 서천장이 서는 날이다. 만약 이용하는 사람이 없는 날이어도 택시는 정해진 날짜, 시간에는 항상 마을을 찾는다. 탑시마을을 방문한 날, 마을 행사 때문에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오전 9시가 되자 택시는 당연하다는 듯 마을회관 앞에 나타났다. 마을회관은 택시기사와 주민들이 만나는 장소로 일종의 정류장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희망택시가 마을을 드나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시내까지 20~30분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생활이 편리해졌다. 택시라서 교통비가 상당할 것도 같지만 희망택시는 고정된 요금으로 운영된다. 읍소재지까지는 1,300원, 면소재지까지는 단돈 100원. 택시에 몇 명이 타든 요금은 같고 차액은 군에서 보조한다.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100원 택시’로 더 많이 불린다.

▲ 이원호 관포리 상관마을 희망택시 기사가 마을 주민들을 마을회관 앞까지 태워온 후 짐을 내려주고 있다. 택시를 이용한 어르신들이 연신 고맙다며 이씨를 칭찬한다.
“택시가 자식보다 낫지.” 희망택시 얘기를 하는 내내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던 김기월(79)씨는 칭찬을 한보따리 늘어놓는다. “너무 잘 한 거야. 택시가 효자지 뭐. 장 보러 나가기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며칠에 한 번씩 장을 볼 수 있응께. 병원도 시내에 있는데 참 편해졌어. 예전에는 장 봐온 짐 다 짊어지고 버스 타고 그랬지. 쌀? 머리에 이고 갔지 뭐. 아픈 사람들은 택시 불러서 가기도 했는데 자주는 못 갔어.” “기사 양반도 사람이 참 좋아”라며 김씨가 택시기사 칭찬을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도 옆에서 한 마디씩 거든다. “아유 얼마나 친절해.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짐도 내려주고.” “기사양반 월급 많이 줄랑가? 많이 줘야 되는데.”

처음 희망택시 제도를 도입할 때 마을 주민들은 협의를 통해 마을별 전담택시를 선정, 사전에 운행 시간표를 작성했다. 전담 택시기사가 일 년 넘게 같은 마을을 드나들면서 마을 주민들과 택시기사 사이엔 끈끈한 정도 생겼다. 관포리 상관마을 전담택시기사 이원호씨는 “지난해 자발적으로 신청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보람도 있고 어르신들하고도 꽤 친해졌다”며 “군에서 운영하는 것이라 택시기사 입장에서는 행정적인 절차가 좀 까다롭긴 하다. 이런 점이 좀 개선되면 실제 현장에서 뛰는 택시기사들도 더 힘을 내서 운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희망택시의 의미는 주민들의 교통 편의성 제고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을과 시내를 연결하는 교통수단이 생기면서 이전보다 마을에 활기가 돌고 소득도 소폭 증가했다. 문산면에서 희망택시를 이용하는 몇 어르신들에게 소일거리가 생긴 것. 문산면사무소 희망택시 담당자는 “한산면을 방문할 때 마다 어르신들이 모시를 다듬는 소일을 하고 돌아오신다. 희망택시가 단순히 편리성 증대를 떠나 거동이 어려운 분들에게 생활의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어르신들의 시간적여유가 늘어나면서 지역 경제에도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희망택시 제도가 도입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택시가 버스 노선처럼 운행하는 것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서 금지하고 있고 대중교통육성에 관한 법률에서는 택시에 대한 재정 지원도 제한하고 있기 때문. 황인귀 서천군청 희망택시 담당자는 “이런 이유로 지방자치법 9조 2항의 주민복지증진에 관한 내용에 근거해 제도를 마련하게 됐다. 건설교통부, 법제처 변호사 등에게서 법률자문을 얻어 주민의 교통복지 확충 측면으로 접근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지난해 6월 처음으로 운행을 시작한 후 10개월 만에 무려 2만2,000명 가량이 희망택시를 이용했다. 현재 군 예산 1억원이 투입돼 6개 읍·면, 23개 행정리를 대상으로 운행 중이다.

희망택시를 운영하는 주체는 서천군이지만 그 뒤에는 마을 주민들의 오랜 노력이 있었다. 김석봉(63) 탑시마을 이장은 “마산면만 농어촌버스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 다섯 곳이다. 이런 마을끼리 모여 2년 정도 계속 군에 건의했다. 처음엔 버스를 지원해달라고 건의했는데 예산이 많이 든다 해 지금의 희망택시가 도입됐다. 결과적으로 택시는 버스에 비해 예산도 적게 들고 어르신들은 더 편해하신다”고 말했다.

“동네일도 이장이 잘해야 단합이 잘 되고 좋지. 이장님이 열의도 있고 잘 해. 여기 마을 중 우리 마을이 단합이 제일 잘 될겨”라며 추켜세우는 김기월씨에게서 마을에 대한 진한 애정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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